컨버전스는 가라 … 요즘 가전은‘기능 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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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여러 기능을 한데 묶은 ‘컨버전스(Convergence·융합)’ 전자제품이 ‘해체’되고 있다. 다기능에서 오는 거품을 빼고 본연의 핵심기능에 집중하는 ‘디버전스(Divergence·탈융합)’ 제품이 불황기를 맞아 인기인 것이다. 가령 카메라는 카메라 기능에, 세탁기는 세탁기 기능에 주력함으로써 제품을 단순화하는 대신 값을 내리는 전략이다.

◆단순한 것이 좋다=대만계 내비게이션 전문업체인 미오코리아가 지난해 6월 선보인 ‘Moov 301’은 반 년 만에 15만 대 팔렸다. DMB와 노래방 같은 부가기능을 과감히 없애고 화면 크기를 10.9㎝(4.3인치)로 줄인 대신 값을 10만원대로 확 낮췄다. 맵은 엠앤소프트의 ‘지니 SF’를 탑재하고 초기 가동 시간을 10초 이하로 줄이는 등 내비게이션 기능만 충실하게 갖췄다.

레인콤은 8.9㎝(3.5인치) 화면에 무게가 135g인 ‘아이리버 NV미니’를 18만원에 내놓았다. 이 회사의 MP3플레이어 ‘아이리버 M플레이어 아이즈’나 애플의 ‘4세대 아이팟 셔플’ 등은 액정화면(LCD)을 아예 없애 동영상 감상이나 DMB·전자사전 기능을 포기했다. 음악 재생에 전문화하는 대신 값이 5만원 안팎이다.

다양한 부가기능 대신 통화와 문자에만 집중해 40대 이상의 소비자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은 LG전자 ‘와인폰’도 디버전스 제품이다. 넓게 보면 넷북도 이 범주다. 다나와의 정세희 팀장은 “고성능 프로세서와 대용량 메모리·저장장치를 갖추고 게임·멀티미디어 편집까지 해내는 일반 노트북과는 달리 넷북은 인터넷과 업무용으로 특화하면서 작고 가볍게 만든 제품”이라고 설명했다. 올 들어 국내 노트북 판매량의 25%를 점한다.

가전제품도 예외는 아니다. 동양매직이 지난해 10월 대형마트용으로 선보인 가스레인지는 그릴·건조 등의 부가기능을 빼고 값을 4만9000원으로 낮춰 한 달 만에 1400대가 모두 팔렸다. 대우일렉이 대형마트용으로 출시한 통돌이세탁기는 드럼세탁기의 절반 수준인 26만9000원의 가격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이마트 서혁준 바이어는 “지난해 드럼세탁기 판매는 8% 줄어든 반면 일반세탁기는 25% 늘어났을 정도로 실속형 소비가 자리 잡고 있다. 올해도 비슷한 추세일 것 같다”고 말했다.

LG경제연구원은 최근 보고서에서 디버전스와 저가 유통채널의 부상을 올해 5대 사업 트렌드의 하나로 꼽았다. 휴대하기 좋은 넷북, 음성통화 위주의 휴대전화, 촬영 중심의 보급형 카메라 등이 디버전스 제품의 가격 거품을 뺀 대표적인 사례로 불황기에 큰 힘을 발휘할 것이란 전망이다. 한영수 책임연구원은 “디버전스 제품이 많아지면서 미국 월마트나 한국의 이마트 같은 염가 매장의 입지가 소비자 전자제품 분야에서도 커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명품 마케팅’도 병행=여러 기능을 한데 갖췄더라도 디자인과 성능·편리함이 뛰어난 고급 전자제품에 대한 수요는 특정 브랜드 매니어나 여유 계층을 중심으로 꾸준하다. 지난해 9월 선보인 삼성전자의 노트북 ‘센스X360’은 260만원이 넘는 가격에도 지난달에만 1500대가 팔렸다. 전체 노트북 내수 판매는 월 5만 대 수준으로 지난해 같은 달보다 10% 정도 줄었지만 월 600대 정도 팔리던 최고급 모델 수요는 오히려 늘어난 것이다. LG전자와 델은 각각 300만원 안팎의 ‘엑스노트 P510’과 ‘래티튜드 E4200’으로 고가 마케팅을 강화하고 있다.  

김창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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