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무상 취중 회견 후폭풍 … 일본 자민당 금주령 발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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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일본 집권 자민당에 금주령이 떨어졌다. 주요 7개국(G7)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 회의에서 술에 취해 기자회견을 했다는 의혹을 받아 국제적 망신을 산 뒤 17일 사임한 나카가와 쇼이치(中川昭一·55·사진) 전 재무·금융상 때문이다.

지지(時事)통신에 따르면 자민당의 주요 계파 간부들이 19일 저녁 도쿄의 한 음식점에서 열린 모임에선 이례적으로 술이 등장하지 않았다. 이날 모임은 가와무라 다케오(河村建夫) 관방장관과 자민당 내 각 계파 사무총장이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전 총리의 아소 다로(麻生太郞) 총리 비판과 나카가와 사퇴 등으로 인한 당의 혼란을 수습하려는 자리였다. 통상 이런 모임은 반주를 곁들이면서 건배가 있는 것이 관례였으나 이날은 달랐다.

모임 간사였던 야쓰 요시오(谷津義男) 전 농수산상은 “모임에서 술을 일절 마시지 못하게 했다. 술이 마시고 싶은 사람은 빨리 돌려보냈다”고 밝혔다. 지지통신은 “나카가와 취중 회견에 대한 여론의 거센 비난을 의식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평소 호텔 바 등을 돌며 저녁 술자리를 즐겼던 아소 총리도 요즘 업무 후 곧바로 관저에 돌아가는 일이 많아져 평균 귀가 시간이 1시간30분 빨라졌다고 일본 언론들이 전했다.

한편 나카가와에 대한 비난 여론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19일엔 그와 함께 로마에 출장 갔던 다마키 린타로(玉木林太郞) 재무성 국제국장이 중의원예산위원회에서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나카가와는 13일 이탈리아행 특별기 안에서 감기약을 먹은 다음 술을 마셨으며 첫날 행사를 마친 뒤 친한 기자들과 진토닉을 마셨다. 14일에는 오후 2시 넘어 재무성 간부·기자 등과 함께 파스타로 늦은 점심을 때웠다. 이때 나카가와가 와인을 직접 주문했다. 다마키 국장은 “와인 잔을 입에 댄 정도였다”고 밝혔다. 그 후 나카가와는 30분가량 혼자 방에서 휴식을 취했고 오후 3시부터 러시아 재무장관과 러·일 재무장관 회담에 나섰다. 그는 회담 중 눈을 감고 한동안 반응을 보이지 않는 등 몽롱한 상태였다. 회담에 동석한 러시아의 한 외교관은 교도(共同)통신에 “머리의 전원이 나간 상태 같았다”며 “시차 때문에 몸 상태가 안 좋은 줄로만 알았다”고 말했다. 나카가와는 방으로 돌아가 30분 정도 잔 뒤 문제의 기자회견에 나섰다.

도쿄=박소영 특파원

◆나카가와=농림수산상·경제산업상·자민당 정무조사회장을 역임했다. 지난해 9월 총재선거에서 아소 총리 지지를 선도했다. 1998년 발족한 자민당 내 우파의원 모임인 ‘일본의 앞날과 역사교육을 생각하는 젊은 의원들의 모임’의 초대 회장을 지낸 우파 정치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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