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북지원 경수로 건설 19일 착공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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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북한에 공급되는 경수로 부지공사 착공식이 19일로 확정됨으로써 94년10월 미.북간 제네바합의이후 3년여동안 우여곡절을 겪은 경수로 건설이 본궤도에 오르게 됐다.

앞으로 수년동안 막대한 규모의 장비.물자및 인력이 단계적으로 경수로가 건설되는 함남 '금호지구' 에 투입된다.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 (KEDO) 와 북한은 그동안 원자로 노형 (爐型) , 북한 노동자의 임금수준등 경수로 공급과 관련한 구체적인 사안을 놓고 팽팽하게 맞서왔다.

게다가 잠수함 침투사건까지 일어나 경수로 공급일정은 지연에 지연을 거듭했다.

여기에 북한이 이따금 핵동결 파기 움직임까지 보여 '경수로 제공이 무산되는 것이 아니냐' 는 관측마저 나돌기도 했다.

그러나 금년들어 경수로에 대한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는 북한이 부질없는 고집을 거둔데다 조기착공을 원하는 미국의 주도로 부지.서비스.통행등 세부사항들에 대한 합의가 이뤄져 착공식이 가능하게 된 것이다.

이번 착공식을 계기로 그동안 '조사.협상' 차원에서 이뤄지던 경수로 제공사업은 '공사단계' 로 넘어섰다.

이는 한.미.일, 특히 남한의 대규모 인력과 기술이 장기간 북한에 상주하면서 북한에 도움을 주는 사업을 벌인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현상은 분단이후 처음이라는 점에서 남북관계에서 하나의 획을 긋는 '사건' 이 아닐 수 없다.

이는 또한 한반도문제를 국제적인 공조체제를 통해 평화적.실질적으로 해결하는 첫 시험대라는 점에서도 적잖은 의미가 있다.

경수로 착공을 계기로 남북관계는 상당한 질적 (質的) 변화가 수반될 수 있는 환경에 놓였다.

과거엔 이런 사례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공사가 본격화됨에 따라 남북간의 빈번한 인적.물적 교류는 필연적이다.

특히 수백명의 남북한 근로자간에 '대화채널' 도 형성된다.

이러한 현상에 대한 남북당국의 긴장과 대응은 충분히 짐작된다.

우리는 이를 '북한의 변화' 를 유도하면서 남북간의 신뢰회복을 촉진시킬수 있는 정책수단으로서 활용하려 할 것이다.

이에 반해 북한은 우리측 움직임을 북한체제를 위협하는 '자유화의 바람' 으로 인식하고 이를 차단하기 위한 갖가지 방법을 동원할 것이다.

따라서 단기적으론 공사만 진척되고 눈에 띌만한 남북관계 개선은 없는 양상이 될 소지도 충분하다.

북한당국이 '트로이 목마' 를 떠올리는 것은 당연할지 모른다.

게다가 북한이 체제불안정성을 타개하기 위한 일환으로 대남관계를 악화시킨다거나, 다른 목표를 관철하기 위한 수단으로 경수로 건설을 이용하려 든다면 새로운 정치적 공방의 장 (場) 이 열릴 우려도 있다.

민족통일연구원 전성훈 (全星勳) 연구위원은 "북한이 경수로 제공을 요구한 것은 단순히 에너지를 공급받기 위한 차원만은 아니다" 면서 "북한은 경수로 건설을 미국과의 국교수립등 별도의 정책목표를 관철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할 가능성이 높다" 고 분석했다.

그러나 중.장기적으로 보면 경수로 지원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북한의 변화를 유도할 수밖에 없다는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안희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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