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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담 모아온 송재선翁 '주색잡기사전' 선보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2면

재산이 없는 빈털털이를 가리킬 때 흔히 '가진 것이라고는 불알 두쪽밖에 없다' 는 속담을 인용한다.

'불알 친구' 는 어린시절부터 함께 자란 친구를, '불알값도 못한다' 는 사내답지 못한 사람을 비유한다.

또 '불알을 긁어준다' 는 남의 비위를 기분 좋게 맞춰주는 것을, '불알 떼놓고 장가간다' 는 중요한 일을 빼놓고 헛일만 하는 것을 뜻한다.

그렇다면 '벌거숭이 불알에 잠자리 붙듯한다' 는 무슨 의미. 불알에 붙은 잠자리가 오래 가지 못하듯, 어떤 일을 꾸준하게 못하는 사람을 말한다.

그리고 '지렁이 갈비에 처녀 불알' 은 이치가 맞지 않는 일에, '처녀 불알 빼놓고 다 있다' 는 거의 모든 물건을 고루 갖춘 경우에 사용된다.

속담수집가 송재선 (84) 옹의 '주색잡기 속담사전' 에는 이처럼 우리 조상들의 해학과 익살, 그리고 재담 (才談) 이 다른 어떤 책보다 '진하게' 담겨 있다 (동문선刊) .송옹은 해방이후 지금껏 "우리 삶의 정수는 속담에 있다" 는 절박한 심정에서 일제침략기부터 사라지기 시작한 우리 고유의 속담 채집에 매달렸다.

그 결과를 묶은 책이 속담사전 시리즈. 상말.농어 (農漁).여성.동물에 이어 이번에 5번째로 주색잡기편을 선보였다.

책에는 술.색.잡기 3부분에 걸쳐 3천5백여개의 속담이 실려 있다.

술만 해도 술장사.술꾼.공술.해장술.외상술.안주.주색.주정등 19개 주제로 나누어 해당 속담을 가나다 순으로 정리하고 있다.

'반잔 술에 눈물 나고 한잔 술에 웃음 난다' '사후 석잔 술보다 살아 한잔 술이 낫다' 등 술을 즐겨했던 선인들의 정취가 배어 있는가 하면, '술과 늦잠은 가난이다' '깊은 물보다 얕은 잔에 빠져 죽는다' 등 과음을 경계하기도 한다.

결국 '한잔 술은 약이요, 두잔 술은 웃음이요, 세잔 술은 방종이요, 마지막 술은 광증 (狂症) 을 낸다' 는 것. 그러나 애주가들은 어쩔 수 없는 모양. '술에는 삼 껄이 있다' 고 한다.

몇차례 술잔이 돈 후 술을 권하면 안될 껄 하면서, 또 권하면 과할 껄 하면서, 또 권하면 취할 껄 하면서 마신다는 것이다.

더욱 흥미로운 부분은 홀아비.고자.과부.첩.시앗.기생.갈보.오입.질투.색골.성교.자위등 25부로 짜여진 색편. 일상 대화에선 손쉽게 꺼내지 못할 걸죽하고 노골적인 육담이 압권이다.

불행이 행복으로 변할 때 쓰는 '가지밭에 자빠진 과부' 나 부부간의 육정 (肉情) 을 돌려 말한 '살송곳 맛을 알면 정 붙어 살게 된다' 는 애교 있는 편에 속한다.

동성애 관련 속담도 있어 성미가 급한 사람엔 '중신아비 비역하겠다' 고 조롱했다.

속담은 또한 시대상을 반영하기 마련. 일제시대에 토지를 마구 약탈한 조선총독부를 빗대 아무 여자와 관계하는 사람을 '총독부 말뚝' 이라고 불렀고, 별다른 무기없이 일본군과 싸울 수밖에 없었던 상황에서 '으로 왜놈 목 친다' 는 말도 회자됐다. 잡기편에는 노름.투전.장기.윷놀이등과 관련된 속담들이 소개됐다.

송옹은 "주색잡기 속담은 대화 상대가 제한돼 소멸된 것이 많은 반면 특유의 풍자와 재치로 다른 속담보다 더 큰 웃음을 선사한다" 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 돈.사람사전을, 그리고 50년간 채집한 5만5천여개를 모아 대속담사전을 엮을 작정이다.

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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