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생 방학숙제 부모가 대신해주는 경우 다반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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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요즘 국립중앙박물관 전시실에는 초등학생들로 만원이다.

하루 2천여명, 휴일에는 3천5백여명의 관람객중 방학숙제를 하러온 어린이가 반이상을 차지한다.

그런데 이곳에서는 매일 진풍경이 벌어진다.

어린이들은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며 주마간산으로 지나치는데 정작 따라온 어머니들은 수첩을 든 채 열심히 메모를 하느라 설명문 앞을 떠나지 못한다.

심한 경우는 아이는 다른 곳을 보자며 보채는데 토씨하나 틀리지 않게 끝까지 메모를 하는 엄마도 있다.

방학숙제를 대신해 주는 엄마들이다.

국립중앙박물관측은 숙제를 대신 해주는 엄마가 10명중 대략 8명은 될 것이라고 일러준다.

이처럼 박물관에서 엄마가 직접 숙제를 하는 이유는 '자신이 직접 적어야 아이보다 더 많이 더 빨리 적는다' 는 것. 전시회나 박물관에서만이 아니다.

주부 김모 (34.서울서초구잠원동) 씨 아들 (초등학교4년) 의 방학숙제는 '동네 모형도 만들기' .별다른 설명도 없이 주어진 숙제에 대해 아들은 "자기는 도저히 못하겠다" 고 울먹이기만 해 하는 수 없이 사흘동안 꼬박 모형도에만 매달려 겨우 숙제를 해주었다.

김씨는 "숙제를 안해가면 선생님에게 꾸중들을 게 뻔한데 어떻게 안해 줄 수가 있느냐" 고 털어놓는다.

요즘 자녀 대신 방학숙제를 해주는 부모들이 크게 늘고 있다.

이같은 현상은 단순지식 위주의 숙제에서 문화재 견학등 체험학습이 늘어났기 때문. 또 시간이 하루종일 걸리는 경우에는 학원이나 과외를 빠지지 않게 하기위해 아예 엄마만 가서 숙제를 해오는 경우도 있다고 학부형들은 들려준다.

올 여름방학에는 '각종 민원창구가 하는 일 알아오기' , '우리동네 문화재 알아오기' , '계절별 꽃 10가지 이상 그리기' 등 다양한 숙제들이 주어졌다.

하지만 실제 부모들이 숙제를 아이가 익히는 지식의 양을 생각하는 게 아니라 담임에게 제출하는 양과 내용에만 집착, 부모들이 직접 나서는 그릇된 풍토를 낳고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부모들이 '아이가 하기엔 너무 어려운 내용이어서 부모가 나서지 않을 수 없다' 고 하는 경우도 대개는 '과제물에서 최고의 평가를 받아야 한다' 는 부모의 의식이 작용하기 때문이라는게 교육관계자들의 지적이다.

어린이들이 자신의 수준에 맞춰 과제물을 했을 경우 성적이 뒤쳐질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것. 여기에는 어린이의 능력은 고려하지 않고 객관적으로 우수한 것만을 평가하는 교사들의 평가기준도 한 몫을 한다.

서울동대문구 장평초등학교의 경우에는 이런 폐단을 없애기 위해 4학년생들에게 '가족들의 키.몸무게 재기' , '족보 및 친척간 호칭배우기' , '1주일에 손톱.발톱 깎아주기' 등의 숙제를 내 부모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이화여대 조연순 (趙延順.초등교육과) 교수는 "부모가 아이 대신 숙제를 해 줄 경우 자녀의 지식을 쌓는 기회를 막는 것은 물론 아이의 정직성과 창의성을 해치고 의존심만 기르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며 "아이를 위한 올바른 판단을 해야 할 것" 이라며 충고한다.

이교수는 또 "교사들도 방학과제에 대해 귀찮더라도 학생이 했는지를 판별하도록 노력해야하며 숙제를 낼 때에는 정답을 원하는 과제보다 스스로를 발견하고 아이들의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것이 되야 할 것" 이라고 조언한다.

신용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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