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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에 산다]소문난 농사꾼 전전남지사 김재식씨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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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시멘트 포장도로 한켠에 빨간 고추를 내다말리던 아낙이 산자락 아래 한집을 가리킨다.

무성한 녹음아래 백일홍이 선명한 집이다.

고무신에 소매를 걷어붙인 차림. 그는 막 고샅을 나서던 중이었다.

한낮인데도 논에 나가는지 손에 대나무 자루로 된 기다란 삽이 들려있다.

소문난 농사꾼 김재식 (金在植.74) 전전남지사다.

흙에 묻혀 사는 그가 유명세를 타고 있는 것은 최장수 전남지사 (69~73년).국회의원 (10대) 등 화려한 이력때문만은 아니다.

그가 재배한 품종마다 풍작을 거두고 있기 때문이다.

"도움을 받기만 하고 살아온 세상, 이제 갚으며 살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 고희 (古稀) 때인 지난 92년4월 그는 서울생활을 정리하고 고향인 전남장성군장성읍영천1동 오동마을로 돌아왔다.

일본 출장길에 하나씩 챙겨왔던 벼품종 10여개가 그가 지닌 거의 전부였다.

와서 본 고향농촌은 쌀수입개방 파고로 변화를 요구하고 있었다.

과학영농을 주장하는 그를 고향사람들은 반신반의했다.

이에 아랑곳없이 그는 문중 논 4백평을 빌려 묵묵히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선친이 지은 3평 남짓한 정자 (梧泉亭) 의 관리실에서 기거하며 일본의 농사전문지등을 뒤적이며 선진기술 습득에도 힘을 쏟았다.

농사 첫해 일본 품종 고시히카리를 개량한 오동미를 생산해냈다.

"세계에서 가장 맛있는 쌀" 이라는 찬사가 쏟아졌고 전국에서 신품종 종자를 얻기 위해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함평학다리.해남옥천.장성삼서농협등은 그의 논에서 재배된 신품종 볍씨를 가져다 10만~20만여평에 집단으로 공동재배해 일반쌀보다 50%이상 높은 가격에 출하하기도 했다.

지금까지 그가 시험재배한 벼품종은 19가지. 추석전에 수확할 수 있는 초극조생을 비롯해 붉은 쌀이 나오거나 이삭이 보라색을 띠는 것등 다양하다.

"벼종자는 법에 의해 정식으로 들여올 수 없어 주로 일본 친구들이 한국에 올때 호주머니에 넣어 가져다 줬지요. " 중.대학을 일본에서 나온 것이 농사꾼인 그에게 큰 도움이 됐다.

수확철에 맞춰 그는 논에서 쌀농사 평가회를 갖고 꿈의 쌀.무등미.한가위등 새이름을 지어 농민들에게 재배하고 싶은 것을 베어가게 한다.

그는 또 95년5월이후 자신의 농사철학을 담은 회보 '농민의 행복을 찾아서' 를 한달에 세번 2백여부씩 발행, 희망하는 사람에게 보내주고 있다.

타블로이드판 앞뒤에 농업정보.기술.생활지혜등을 담아 직접 워드프로세서를 사용해 만들고 있다.

"논두렁과 밭두렁에서 농민들과 얘기하다 죽으면 행복할 겁니다.

장기와 시신 기증 약속도 다 돼있어요. " 노농 (老農.그의 호) 의 땀과 열정이 한창 이삭이 패는 들녘에 출렁이고 있었다.

장성 = 천창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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