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변은 벌거벗은 '욕망전시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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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해변에선 무슨 일이 일어날까. 쨍쨍한 태양 아래,여름 날의 ‘추억 만들기’?

고단함을 털어내는 의식이 마치 몸부림처럼 벌어진다. 그러면서 인간은 발가벗는다. 남의 싱싱한 몸매 훔쳐보기. 그리고 비틀린 자본의 논리에 좌절하기. 정말 눈이 튀어나올 지경이다.

동해는 대목을 맞은 호객꾼들의 고함소리와 함께 다가온다. “탈의실·샤워 포함해 주차장 5만원,파라솔 4만원.”

“말도 안 돼. ” 부산의 치과의사 김기철(34)씨의 외마디. 해도 너무하다. 바닷가의 시장경제란 이런 것인가. 아니 시장경제는 아예 더위 먹고 마비상태? 그는 오기로 대여섯군데나 더 돌아다니다 만난 4만원짜리 주차장이 반갑다.

평상(平床)이 여섯개 있고 푸른 비닐로 얼기설기 가린 샤워실이 네군데다. 바람이 불자 비닐이 펄럭이더니 옷을 갈아입던 남자의 당황하는 모습이 드러난다. 해변에 품위란 없다.

안쪽에는 주차장에 텐트를 치고 지내는 가족이 여럿 보인다. 버너 위에서 된장이 끓고 있다. 경기도 안산에서 왔다는 박덕희(47)씨에게 말을 걸어보니 “민박은 한가족에 10만원 넘게 줘야하고 마땅히 텐트 칠 장소도 없어 여기서 사흘을 보내고 있다”고 한다. 그 광경을 보는 바람에 씁씁한 기분으로 물가로 향할 수밖에 없다. 햇볕이 따갑다. 1만원에 빌린 파라솔을 펼치니 한평 남짓한 그늘이 나온다. 값비싼 그늘이다. 절약파들은 영화상영용 대형 스크린이 만든 그늘에 자리 잡고 있다. 통신회사가 홍보를 위해 해변에서 진행하는 행사용이다. 그러고 보니 해변 곳곳에 기업체 홍보 현수막이 걸려 있다. 시도 때도 없이,원샷에 된다는 전화광고부터 소리 없다는 자동차 광고까지. 여기서 가져간 소라껍질을 귀에 대면 파도소리 대신 CM송이 흘러 나오지 않을까.

해변 여기저기서 호출기와 휴대전화 벨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네네. 감사합니다. 다시 연락주세요. 휴대폰 계속 열어 두겠습니다.” 서울에서 제약회사 영업사원으로 일하는 김봉주(36)씨는 통화가 끝나자 전자수첩에다 뭔가를 입력하고는 담배를 꼬나 문다. 벨소리가 높을수록 짜증이 높아지게 마련. ‘테크놀로지’는 그에게 휴가라는 이름의 해변근무를 명령하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물속에 들어가서 바라본 해변은 숫제 공단(工團)하나를 바닷가로 옮긴 형국이다. 입지가 좋은 공간은 한결같이 ‘00주식회사 하계 휴양소’표시가 나붙었으니…. 휴가를 개인의 권리가 아니라 생산성 향상방법으로 여기는 한국형 기업문화와 이에 맞춘 사원복지의 한 형태인가. 아니면 개인보다 집단에서 더욱 위안을 느끼는 사회상의 반영인가.

그래도 해변에는 ‘가족’이 있어 푸근하다. 한 남편 김기철씨는 “집에서 쉬면 아이들 기가 죽고 집사람이 섭섭해 할까봐”,그 부인 정임연(34)씨는 “남편의 스트레스를 풀어주고 아이들을 즐겁게 해주기 위해” 해변에 왔다고 한다. 아이들의 말은 어떤가. “열나고 아픈데 엄마·아빠가 가자고 해서 억지로 따라왔어요.”

자신을 위해 바다로 온 사람은 아무도 없다. 모두가 가족을 위해 발길을 옮긴 것이다. 그래서 바닷가에 왔다 가면 가족관계가 더욱 끈끈해지는 모양이다. 그들을 지켜보고 있자니 바닷바람이 한결 시원하다. 지옥의 피서길이었지만 그래도 오길 잘 했지.

해변은 남녀가 가장 원시적인 모습으로 만나는 공공장소가 아닌가.

우선 누군가의 노출된 몸매를 은밀히 훔쳐보는 즐거움은 바닷가에서 맛볼 수 있는 재미중 하나다.

음흉하다고 생각지 말라. 인간의 본성이니까. 수영복 차림으로 몸매를 뽐내고 다니는 노출증이나 수영복을 절대 입지 않는 부끄럼증 모두가 사실은 누군가가 은밀히 훔쳐보고 있다는 것을 전제로 나타난 증세들이다.

선글라스는 뭣 때문에 쓰는가.

그런데 사진에 나타난 해변은 온통 비키니 차림뿐이던데 실제 와보니 왜 이렇게 드문 걸까. 아내를 백사장에 두고 아들과 둘이서 물놀이를 하던 남자의 눈이 갑자기 휘둥그레진다.

하얀 비키니 차림의 여자가 등장한 것이다.

그래서 그는 근처를 계속 맴돈다.

그런 사람이 한둘 아니다.

엄마 찾으러 가자는 아이를 달래가며 주변에 계속 머무는 남자도 있다.

무슨 지남철 같은 것. 남편이 베이스 캠프로 돌아간다.

이번엔 아내가 물로 향한다.

남편의 시선이 좀 야릇해 보인다.

오랜만에 태양 아래서 보는 아내의 몸매가 색다르다고 느끼는 건 아닌지. 하지만 상상력은 금방 이렇게 바뀔지도 모를 일이다.

아내 주변을 맴도는 건장한 남자들…. 설마 그럴 리야. 아냐, 수영복 엉덩이 부분이 너무 패었거든. 한참만에 돌아온 아내. "너무 재미있어요. " 남편은 괜히 투덜거린다.

"왜 그리 오래 있었어? 걱정했잖아. " 무슨 걱정 말인가.

파도도 가부장적 '남녀유별' 을 씻어가진 못하나 보다.

할머니들이 단체로 나타난다.

파도의 영향이 없는 얕은 곳에 발만 담그고 있던 할머니들중 두분은 아예 주저앉는다.

뭐라고 그럴까. 궁금하다.

"흉칙하게 우리가 수영복을 입을 수도 없고. 물속에는 들어가고 싶고. " 그래서 이러고 있는 거란다.

그래도 할아버지들은 웃통을 다 드러낸 채 반바지를 입고 몸에 물을 적신다.

60대의 다른 두 할머니가 물에 발을 담근다.

갓 백일이 지났음직한 갓난아기와 서너살짜리 아이를 데리고 있다.

"아들.며느리가 노는데 우리가 아이들을 봐줘야지 누가 하겠소. " 그래서 자식들이 어머니를 바닷가에 모시고 오는 모양이다.

어느 가족의 해변 식사모습. 남편.아들들과 함께 바닷가에 온 50대 아주머니는 식사는 않고 주저앉아 고기만 계속 굽고 있다.

가족들이 식사를 마친 후에야 남은 음식으로 요기하고 혼자서 설겆이를 한다.

장소만 집에서 해변으로 바뀌었을 뿐 가사노동의 무게와 여성으로서의 질곡은 마찬가지다.

주부는 휴가도 없다.

휴가철 해변만큼 남녀의 굴절된 권력관계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곳이 또 있을까. 채인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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