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겉과 속 다른 중국의 보호무역 잣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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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중국 언론과 학자들에겐 요즘 미국의 보호무역주의적 태도가 불만이다. 구제금융을 받은 미국 기업들에 ‘미국산 제품만 사라(Buy American)’고 강요하는 미국 정책을 문제 삼고 있다. 중국의 한 시사평론가는 이를 “강도의 논리”라고 몰아붙였다.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의 20일 중국 방문을 앞두고 이 문제는 새로운 갈등 요인으로 불거질 조짐이다.

중국 측 태도는 분명하다. 상품·서비스의 공정거래 보장이다. 과거 ‘죽(竹)의 장막’으로 불렸던 쇄국의 대표주자 중국이 개혁·개방 30년 만에 시장경제의 첨병 미국을 향해 “문을 열라”고 외치는 것은 진풍경이다. 중국 상무부 관계자는 9일 내외신 기자회견에서 “중국산 제품만 구입하라(Buy China)는 정책은 쓰지 않겠다”고 단언했다. 혼자만 살겠다는 미국과 달리 중국은 상생의 미덕을 발휘하겠다는, 일종의 차별화 공세인 셈이다. 그러나 중국은 사흘 만에 언행 불일치를 드러냈다. 상무부는 12일 “합성섬유와 페트병의 원료로 쓰이는 한국·태국산 테레프탈산(TPA)에 대한 반덤핑 조사를 시작한다”고 공표했다. 조사 대상도 2005년 1월부터 2008년 9월까지로 넓게 잡았다.

TPA는 한국이 매년 28억 달러(약 4조2000억원)를 중국에 수출해온 대표적 효자 상품이다. 반덤핑 조사 소식에 관련 업계는 바짝 긴장하고 있다.

중국 측은 “지난해 12월 12일 2개 중국 업체가 제소한 데 따른 통상적 조치”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상생이 강조되는 글로벌 금융위기의 상황이라는 점, 특히 지난해 12월 13일 일본 후쿠오카(福岡)에서 열린 한·중·일 3국 정상회담의 합의 정신에 어긋난다는 점에서 이는 그냥 넘길 수 없는 문제다. 중국은 원자바오(溫家寶) 총리의 서명이 채 마르기도 전에 한국에 일격을 날렸다. 그런데도 한국 정부는 꿀 먹은 벙어리다.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이 이달 말께 베이징(北京)을 방문할 예정이다. 이 자리에서 “후쿠오카 합의 정신을 지키라”고 중국에 당당히 요구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장세정 베이징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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