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경제위기는 석유의 저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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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호 30면

러시아 경제 불안이 끝 모를 지경이다. 지난해 5월에 비해 무려 70% 이상 빠진 러시아의 주가지수는 말할 것도 없고, 지난 7~8년 동안 지속적으로 강세를 보였던 루블화 가치도 최근 6개월 사이에 50% 가까이 폭락했다. 지난해 경제성장률은 5.6%(잠정치)였지만, 지난해 12월 산업생산은 전년 같은 달에 비해 마이너스 11%로 곤두박질했다.

그 여파로 올 성장 전망이 나날이 어두워지고 있다. 올해 초 유럽연합(EU)과 국제통화기금(IMF)은 러시아 경제의 올해 성장률 전망을 1% 초반까지 낮췄다. 최근에는 러시아 경제부마저 마이너스 0.2%로 성장률 전망을 낮춘 것으로 전해졌다.

놀라운 반전이다. 지난해 상반기까지만 해도 러시아 경제의 가장 중요한 화두는 경기 과열을 어떻게 식히느냐였다. 러시아는 2007년도에 8%를 넘는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을 기록했다. 지난해 상반기엔 치솟는 국제유가와 더불어 쏟아져 들어오는 오일달러로 주가 폭등과 인플레이션을 걱정하는 형편이었다. 지난해 6월 초에는 세계은행이 러시아의 경기 과열을 공개적으로 우려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난해 중반부터 국제 유가가 내리막으로 돌아서면서 러시아 경제의 좋았던 시절도 막을 내리기 시작했다. GDP의 30% 이상이 석유를 비롯한 에너지산업에서 나오고, 전체 수출의 60% 이상이 석유와 천연가스로 이루어질 정도로 에너지 산업에 의존적인 러시아 경제는 국제유가 하락 앞에서 너무나 무력했다.

여기에다 지난해 9월부터 본격화한 세계 금융위기와 연이은 실물경기 침체는 러시아 경제에 결정타를 날렸다. 내부 문제도 크게 작용했다. 지난해 8월 그루지야 침공은 러시아의 일방적인 승리로 끝났음에도 러시아와 러시아 경제에 대한 대외적인 신뢰도와 안정감에 적지 않은 타격을 가했다. 또 블라디미르 푸틴 총리가 이끄는 러시아 정부의 지나친 경제 규제와 대규모 외국인 투자기업에 대한 견제도 문제였다.

러시아 정부는 경제 상황의 악화를 막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부실 위기에 빠진 금융회사와 중소기업을 구제하기 위해 여러 차례에 걸쳐 막대한 정부 돈을 투입하고 이자율을 낮췄다. 러시아 중앙은행은 루블화의 가치 하락을 막기 위해 최근 3~4개월 동안 외환보유액 1500억 달러를 투입했다. 심지어 보호무역주의라는 비난을 무릅쓰고 자동차와 금속제품 등에 대해 수입 관세를 올리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정책들은 아직까지 별다른 효과를 보이지 않고 있다. 이에 따라 정부에 대한 러시아 국민의 불만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 1998년 같은 국가부도 사태가 되풀이될 수 있다는 최악의 시나리오까지 등장하고 있다.

과연 러시아 경제가 이렇게까지 악화될 것인가? 아직까지 그 정도는 아니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여전히 러시아는 4000억 달러 가까운 외환을 보유하고 있다. 이 가운데 절반인 2000억 달러가 국부펀드로 조성돼 있다.

러시아 경제가 회생할지 여부는 국제유가에 달렸다. 러시아 재무부는 올 예산안을 수정하면서 국제유가를 배럴당 40달러로 추정했다. 이는 많은 전문가가 올해 예상한 최저 수준의 국제유가다. 이전에는 국제유가 90달러를 기준으로 예산을 짰다. 국제유가 하락을 반영하는 바람에 올해 재정적자가 예상된다. 최근 8년 만에 처음이다. 적자 폭은 GDP의 4% 정도로 예상된다. 이 정도 적자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게 러시아 정부의 주장이다. 하지만 국제유가가 40달러보다 훨씬 밑도는 사태가 장기간 이어진다면 상황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

러시아 경제위기는 최근 7~8년 동안의 고유가 시대에 벌어들인 오일 머니를 첨단산업에 제대로 투자하지 못하고 에너지산업에 대한 의존도를 더욱 키워온 데서 비롯됐다고 할 수 있다. 이 점을 알아챘는지 러시아 정부는 혁신(innovation)을 통해 2020년까지 첨단산업 국가로 변신한다는 장기 발전 전략을 최근 내놓았다. 이 전략이 제대로 실천되지 않는다면 러시아 경제는 국제유가 흐름에 따라 과열과 호황을 넘나드는 불안한 신세에서 벗어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월드 프리즘은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세계지역연구센터의 최고 전문가들이 돌아가며 주요 경제권을 분석·조망하는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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