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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실기업 사태와 경제위기 관리 긴급토론회 - 토론요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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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대기업의 잇따른 부실화는 올해 우리 경제의 가장 어려운 숙제로 부각되고 있다.

한보.삼미.진로.대농에 이어 기아그룹까지 부실화하면서 경제전반에 위기감이 번지고 있다.

부도 예상기업 리스트도 공공연히 나돌고 있다.

금융시장과 창구가 얼어붙고 기업들은 아우성이다.

이런 상황의 원인과 대책은 무엇인가.

본사와 경제자유찾기모임이 공동 주최한 토론회에서 제시된 원인과 대안을 정리한다. 편집자

▶사회자 (朴英哲금융연구원장) =한보사태이후 재벌급 기업들이 여기저기서 부실위기를 맞고 있다.

우선 부실 원인과 배경에 대해 살펴보자. 최근 속출하는 부실기업에 대해 정부가 할수 있는 일은 무엇인지도 궁금하다.

만약 정부가 할수 없다면 기업은 어느정도의 자구노력을 해야하고, 금융기관은 무엇을 해야 하나. 이 가운데 노조의 역할도 문제를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먼저 부실기업에 대한 정부의 입장을 알아보자. ▶윤증현 (尹增鉉) 재정경제원 금융정책실장 = 한보에서 기아에 이르기까지 부실기업의 공통점이 있다.

우선 외부차입에 과다하게 의존, 기업을 무리하게 확장해왔다는 점이다.

소주회사로 알려진 진로만 해도 백화점에서 첨단업종에 이르기까지 계열회사가 20개가 넘는다.

그것도 자기자본으로 한게 아니라 남의 돈을 꿔서 사업을 벌인 것이다.

자동차 전문회사로 알려진 기아만 해도 계열사가 26개나 된다.

이러다 보니 빚이 지나치게 커져 매출액으로 이자를 감당할수 없는 지경이 됐다.

기아특수강의 경우 연 매출액은 3천2백억원에 불과한데 금융기관 부채는 모두 1조3천억원이나 된다.

이들 기업은 또 외부 차입중 제2금융권의 차입이 절반 가까이 차지한다.

즉 단기금융자금을 끌어다 공장을 지었다.

정부에도 책임이 많다.

기업가들은 일단 규모를 키워놓고 금융자금을 마음대로 끌어 썼고 정부도 기업이 쓰러지도록 그냥 놔두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굳어졌다.

이런 생각이 세계무역기구 (WTO) 체제아래에서도 탈바꿈하지 못한 것이 기업 부실을 낳고 말았다.

起亞 환경변화 적응 못해 기본적으로 개별기업 부실은 기업과 금융기관등 채무자와 채권자 당사자간 결론내야 할 일이다.

정부가 직접 개입하는 일은 마땅치 않다.

그렇다고 정부가 마냥 뒷짐만 지고 있겠다는 것은 아니다.

금융시장의 신용질서 붕괴는 절대로 허용하지 않겠다는 게 정부의 확고한 방침이자 책임이다.

또 우리 기업과 금융기관에 대한 대내외 신인도가 떨어지는 일을 막는데 정부가 최선을 다하겠다.

▶신형인 (辛亨寅) 금호폴리켐 사장 = 정부는 현 상황을 위기로 봐주길 바란다.

그런 뜻에서 정부의 대응은 너무 소극적이다.

작동하지 못하는 시장경제원리만 찾는 것은 사태를 악화시킨다는 우려가 있다.

정부는 우선 금융시장의 불안을 막아줘야 하고, 자구노력을 충실히 하는 기업에 대해선 회생을 도와야 한다.

기업이 자구노력으로 내놓은 부동산이 제대로 처리될수 있느냐도 관건이다.

부동산이 일시에 쏟아져 나와 가격이 급락하는 일이 심화되면 이를 담보로 잡고 있는 금융기관마저 부실화해 일본이 90년대초 겪었던 복합불황이 올수 있다.

▶조왕하 (趙王夏) 동양종합금융 사장 = 기아를 국민기업이라고 하는 시각에는 동의할수 없다.

경영을 잘못했는데도 소유가 분산돼 있다는 사실만으로 국민의 후원을 받고 경제적이지 못한 지원책이 논의되는것은 옳지 않다.

기아는 안팎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실패한 기업이라는 점에서 출발해야 한다.

마땅히 경영진과 노조의 철저하고도 냉엄한 자구노력이 전제돼야 한다.

그룹내의 계약적인 이해관계는 자체 노력으로 해결하는 것이 옳다.

채권단이 기아그룹에 요구하고 있는 것은 정당하다.

▶윤병철 (尹炳哲) 하나은행 회장 = WTO체제에서 정부가 행동하는데는 다소 제약이 있겠지만 정부는 현장에서 벌어지는 사태를 보다 긴박하게 생각해봐야 할 필요가 있다.

WTO보조금협정에 따라 개별기업에 대한 지원은 어렵겠지만 구조조정을 촉진하기 위한 제도마련은 가능하다고 본다.

기업합병을 원활히 할수 있도록 이월결손금의 승계, 의제배당소득에 대한 감세, 대기업및 금융기관의 주식소유한도제 완화등으로 기업합병을 촉진하고 세제상의 감세를 통해 기업분할이나 재산처분등 재무구조 건실화 노력을 뒷받침해야 한다.

특히 세제상의 여러 조치는 보조금으로 간주될 우려도 제기되나 특정성만 없다면 가능하다는 생각이다.

한은특융등 금융기관에 대한 특별지원은 보조금 금지규정을 뚫고 나갈수 있다고 본다.

금융기관에 대한 지원을 통해 문제를 극복하려는 노력을 서둘러야 한다.

실기 (失機) 하면 더 큰 부작용이 파급될까 우려된다.

▶김중웅 (金重雄) 현대경제사회연구원장 = 지금의 대기업 부도사태는 총체적 위기상태다.

WTO의 보조금 금지협정이 있긴 해도 이에 저촉되지 않는 범위안에서 정부의 지원방법을 강구할 수 있다.

단서붙여 10억달러 '輸血' 유럽연합 (EU) 만 해도 지난 15일 이탈리아의 모항공사에 10억달러를 지원했다.

단 지원은 1회에 그치고, 지원자금은 사업재구축에 쓰고, 2000년까지 사업을 확장해서는 안되고, 경쟁사보다 낮은 요금을 책정해서는 안된다는등의 단서를 달았다.

기아의 경우도 정부가 채무보증을 취하고 보증액은 사업재구축에만 쓰고, 과다한 설비투자 증설은 하지 않고, 수출가격을 낮추지 않는등의 조건을 부가하면 경쟁국과의 무역마찰 소지를 피할 수 있을 것이다.

▶김응한 (金應漢) 미국 미시간대 석좌교수 = 신용공황이라는 말이 많이 들려 이같은 말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증권시장을 살펴봤다.

신용공황이 온다고 느끼면 증시가 폭락할텐데 오히려 주가가 올랐다.

올초 6백30수준이던 종합주가지수가 한때는 8백대까지 올랐고 지금은 7백30수준이다.

한보에서 기아까지 부도나 부도유예협약 적용 전후를 봐도 종합주가지수 전체에 주는 영향은 작았다.

대농이 협약에 적용됐을 때는 오히려 주가가 소폭으로 올랐다.

증시가 보통 6개월~1년정도 경기에 선행하는 점을 고려할때 이같은 증시동향은 전혀 신용공황을 예측하지 않고 있다는 말이다.

▶사회자 = 부실기업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에 많은 논란이 있다.

시장원리에 따르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겠지만 현실적인 제약도 무시할 수 없는 형편이다.

부실의 근본원인을 규명하고,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각자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해야할 것인가를 심각히 따져봐야 한다.

최근 부도현상을 어떻게 봐야 할지, 그리고 그 책임소재는 어디에 있는건지 살펴보자.

▶김응한 = 부도는 능력없는 경영진과 경쟁력없는 사업을 퇴출시키는 효과가 있다.

기업의 부도야말로 병의 근본원인을 고치는 수술의 기회라고도 볼 수 있다.

인위적인 정부구제정책은 임시방편용 '반창고' 에 불과하고 수술의 기회를 놓쳐 오히려 상처를 악화시켜 더 많은 비용을 초래할 뿐이다.

사회주의경제가 실패로 돌아간 주요 원인중 하나는 부도라는 경제적 여과장치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망해야할 기업이 안망하면 쿠바나 북한의 경우처럼 국가경제가 파산한다.

이제 대기업들도 경영을 잘못하면 파산할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해 재무구조 개선과 경쟁력 확보에 앞장서야 한다.

미국의 경우 80년대초 경기불황에 직면했을때 당시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극심한 노조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항공관제노조의 불법파업에 대해 노조원 전원을 해고시킴으로써 책임있는 경영뿐만 아니라 책임있는 노동의 필요성도 주지시켰다.

국민의 안전을 위협한다는 반대여론도 있었지만 이를 통해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높이는 계기를 마련했다.

근본적으로 부실기업의 문제는 기업과 노조의 자구 희생노력에 기초해야 하며 정부의 개입은 최소화해야 한다.

▶김중웅 = 부도의 일차적인 책임은 뭐니뭐니해도 기업 경영자와 기업에 있다.

차입위주의 경영에 의존해온 기업들이 제2금융권의 자금을 단기자금으로 충당하다 보니 경영이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기업가 정신 부족도 문제 뿐만 아니라 기술혁신이나 선진금융기법 도입을 소홀히 여겨 경쟁력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자본주의 정신이 결여되고 창조적인 기업가정신이 부족한 것도 문제였다.지금의 총체적인 위기상황은 일차적으로 기업에 책임이 있지만 정부와 금융기관들은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는 부도중에 일시적인 유동성의 부족으로 일어나는 부도들을 최대한 방지하는데 노력해야 할 것이다.

▶사회자 = 최근 일련의 부실기업 사례에서 보면 기업이 위기에 직면했음에도 경영진이 물러난 경우는 드물었다. 왜 그렇게 된 것일까.

▶조왕하 = 아직도 일각에선 결자해지 (結者解之) 라는 차원에서 현재의 경영진이 끝까지 남아 문제를 풀어야한다는 정서가 있다.

경영진 교체는 조직내의 피를 바꿔 분위기를 새롭게 하는 '영 블러드' 의 논리를 따라야 한다.

이제까지 현상유지라는 논점에서 많은 타협이 이뤄져왔지만 경영부실의 처리와 경영진의 거취는 동일한 방향에서 이뤄져야 한다.

▶사회자 = 노조의 경직성.비현실적인 요구.투쟁이 부실의 중요한 원인이 됐다고 볼 수 있는가.

앞으로 노사의 균형을 어떻게 유지해야할 것인가.

▶신형인 = 87년 6.29선언 이후 산업화 과정에서 그동안 억눌렸던 요구들이 분출되며 노조의 요구들이 과잉 분출되는 양상을 보였다.

이 과정에서 그동안 시장경제원리에 맞지 않고 힘의 논리에 따라 과격한 양상을 보여온 것도 사실이다.

앞으로 외국의 노동력 유입이 늘어남에 따라 노동인력의 과잉공급으로 임금이 합리화 과정을 밟아갈 것으로 보이지만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다.

노조와 기업간 이해관계가 얽혀있을때 정부.학계에서는 어느 쪽이 옳은지 입장을 분명히 밝혀야 한다.

모든 노동운동이 실정법의 테두리 안에서 이뤄지도록 정부에서 강력한 입장을 천명하고 견지하는 것이 필요하다.

▶조왕하 = 기아의 경우처럼 부실상황에서는 노사가 공동 책임자라 할 수 있으며 우선적으로 노사간의 문제가 자체적으로 해결돼야 외부지원등을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

▶사회자 = 금융기관의 행태는 어떤 측면에서 부실을 심화시켜왔을까. 은행의 부실기업에 대한 대출이나 사후관리엔 문제가 없는 것인지, 은행의 부도유예협약이 근본적인 문제해결에 도움이 되고 있는 것인지, 금융시장 안정을 위해 은행에 대한 특융은 과연 필요한 것인지에 대해 논의해보자. ▶윤병철 = 기업의 부실은 곧바로 은행의 부실로 이어진다.

아마 우성 부도때부터서야 금융기관에 대해 당사자 해결의 원칙이 제시됐던 것으로 생각된다.

부도유예협약은 금융권들이 자기 위험 탈출에만 발버둥칠 경우 유동성에 위기가 오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로 상당히 긍정적인 것으로 생각된다.

부도유예 기업의 처리나 갱생방법등에 있어 당사자간 이견이 있기 때문에 마치 외부에서 볼때 말썽이 있는 협정처럼 보이는 것이다.

금융시장의 안정을 위해 한은법의 기본정신에 입각해 금융기관에 대해 특융이 이뤄져야 한다.

이를 위해 투명하고 공정.공평한 원칙이 세워져야 하며 그 대상도 철저한 자구책을 실시하고 있는 금융기관으로 한정해야 할 것이다.금융권간 정보공유 필요

▶조왕하 = 종금사등에서 중.장기적 시설투자 자금을 마련하는 기업은 문제가 있다.

종금에서 여신규모의 질과 양은 은행 신탁계정에 대해 종속적인 특징을 지니고 있다는 점을 알아줬으면 한다.

무엇보다 1, 2, 3금융권간 여신의 질과 양등에 대한 신용정보의 공유가 안되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윤증현 = 최근 일부에서 지나치게 신용공황 운운하며 과민한 반응을 보이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지금의 경제현실에 대한 냉정한 판단이 요구된다.

경영진과 마찬가지로 노조도 책임이 있다는 주장에 공감한다.

일시적인 자금난으로 기업이 도산하는데 대해 정부가 적극적으로 임해야 한다는 주장에 공감하며 앞으로 중소기업의 흑자 도산등에 대해선 정부도 적극 대처할 것이다.

한은 특융은 무엇보다 당사자들이 국민의 공감대를 얻을 수 있는, 뼈를 깎는 자구노력이 선행돼야 가능한 문제다.

▶사회자 = 일부 부실기업을 국민기업으로 구제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이같은 사회적 분위기와 전통.정서등을 어떻게 소화해야 하나.

▶김응한 = 국민들의 의식구조도 바뀌어야 한다.

기회보다 결과가 균등해야 한다는 의식은 곤란하다.

잘못을 인정하고 결과를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하다.

정부가 이번 사태를 시장원리를 중심으로 개혁하는 계기로 삼는다면 일부에서 제기되는 신용공황과 복합불황에 대한 걱정은 없다.

오히려 시장경제를 중시하는 사회로 변모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

〈방청석 질문〉

- 대기업의 부실화는 정부도 책임이 크다.

정부의 적극적인 해결책은 무엇인가.

▶윤증현 = 정부책임을 부인하지 않는다.

자본축적이 없는 상태에서 정책을 수행하다 보니 행정부가 자원배분에 직접 간여했다.

그 결과 금융의 자율성이 침해돼온 것도 사실이다.

기업의 부실문제도 금융기관의 자율성이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생긴 것이다.

또 감독시스템이 비효율적이었다는 측면도 있다.

정부는 제도적인 측면에서 이같은 문제를 해결해나갈 방침이다.

- 특융의 한계는 무엇이고, 그에따른 국민부담은 어떻게 하나.

▶윤실장 = 특융을 하겠다고 정한바 없다.

개별기업이 책임을 져야하듯이 그 기업에 대출해준 금융기관도 자구노력이 있어야 한다.

그에 대한 국민의 공감대가 형성돼야 한다.

그 방법으로는 국회 동의도 있을 것이다.

정리 = 고현곤.홍병기.이상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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