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프로 뜻모를 은어·유행어 남발 일반 청취자 어리둥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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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4면

'전 대구에 사는 음악도시 온몸바쳐파 소속 대딩 (대학생) 이옵니다.

이번 당수각하의 온광당 창당 및 전당대회를 개최하신다는 소식에 소인 가슴 벅차 몸둘 바를 모르겠사옵니다.

' 음악도시? 각하? 전당대회? 청취자가 보낸 편지인 이 글을 완벽하게 해독할 수 있다면 당신은 MBC - FM '신해철의 음악도시' 의 애청자. 시장.대통령.당수.위원장…. 시장이 있으면 시민이, 대통령이 있으면 국민이, 당수가 있으면 당원이 있기 마련인 것. 따라서 이러한 프로그램의 청취자는 골수 (? ) 애청자인 경우가 많다.

라디오 프로그램이 점점 컬트 (cult) 화하고 있는 것이다.

이같은 골수애청자를 가진 프로그램은 '신해철…' 외에도 KBS2 - FM '서세원의 가요산책' , SBS - FM 'SBS PC통신' 등이 있다.

가수 신해철은 '음악도시' 라는 프로그램명에 따라 당연히 시장의 지위를 차지하게 됐다.

재미있는 것은 고정 게스트들이 다들 당수 (黨首) 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 빡빡머리 음악인 남궁연이 '온누리 광명당' 의 당수인 것을 비롯, '방송사고당' '얼렁뚱당' 등이 있다.

'SBS…' 는 한 술 더떠 진행자를 대통령이라고 부른다.

이 프로는 라디오를 들으면서 PC통신을 통해 직접 방송에 참여하는 형식으로 진행되므로 라디오와 컴퓨터의 합성어인 '라퓨터 공화국' 을 표방하고 있기 때문이다.

연령을 초월한 많은 수의 패밀리 회원 (? ) 들을 확보하고 마치 사이비 종교의 교주와도 같은 추앙을 받고 있는 진행자는 '위원장' 으로 불리우는 개그맨 서세원이다.

'서세원…' 은 각각 과거.현재.미래의 이야기를 재미있게 꾸미는 '…었었지' '큰일이야' '오늘은 왠지~' 등 청취자들이 전화로 참여할 수 있는 코너가 많아 호응을 얻고 있다.

대통령.시장등의 호칭에 비하면 MBC - FM '별이 빛나는 밤에' 의 진행자를 일컫는 별밤지기나 MBC - AM '싱싱한 아침세상' 의 DJ김나운의 별명인 싱싱돌이는 차라리 고전적이다.

이같은 프로의 애청자들은 PC통신에 소모임을 만들기도 하고 공개방송등에서 만남의 자리도 마련할 정도로 극성이다.

반면 이같은 프로그램들은 "은어 (隱語) 화한 말이 많아 못알아 듣겠다" "자기들끼리만 즐겨 위화감을 조성한다" 는 비판도 함께 받고 있다.

'서세원…' 의 김홍소PD는 "청취자와 유대감을 높이기 위해 프로그램 초창기에 청취자를 조직원.패밀리로 칭하고 일련번호를 주기도 했지만 지금은 프로그램 인지도가 높아진데다 다른 프로그램도 비슷해지는 것같아 그런 용어를 점차 자제하고 있다" 고 말했다.

고정청취자와의 끈끈한 연대를 유지하면서 처음 듣는 청취자들도 자연스럽게 끌어들일 수 있는 해법을 모색하는 것이 이들 프로그램의 숙제일 것이다.

김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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