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구에서] 7. 용유도 을왕리 (1)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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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3면

영종도. 눈앞에 빤히 보이는데도 한나절이 걸렸다.

아침 해무 (海霧) 로 뱃길이 막힌 때문이다.

정오께나 뱃길이 열렸다.

월미도를 출항하자 배의 고물로 갈매기떼가 몰려 든다.

누군가 던지는 새우깡에 결사적이다.

월미도~영종도 뱃길에 있는 갈매기들은 비둘기처럼 길들여져 있다.

을왕리포구는 영종도 선착장에서도 차로 30분. 본래경기도 옹진군 용유도 을왕리였는데 지난 91년 인천시로 편입됐다.

'21세기 세계 중심지. 인천국제공항 건설현장' 을왕리 가는 길에 내걸린 플래카드가 거창하다.

건설현장이라야 아직도 허허벌판에 먼지만 풀풀 날리는데 언제 저 벌판에서 비행기가 뜨고 내릴 지 궁금하다.

공사장 어귀에는 염전이 아직 그대로다.

하지만 염부들은 없다.

한때 소금을 가득 채웠을 소금창고도 비었다.

황량한 소금밭에는 염부들이 퇴약볕을 피해 몸을 가렸을 그늘집이 이미 반쯤 허물어져 간다.

염전 앞 초등학교도 텅비었다.

한창 재잘거릴 섬마을 아이들은 없고 운동장에는 벌써 잡초가 성큼 자라고 있다.

교실 유리창은 깨진채 그대로 있어 스산하다.

을왕리 포구는 '사라지고 있는 마을' 을 지나서 만나게 되는 까닭인지 무척 반갑다.

수도권 가까이 이처럼 넓은 백사장이 있다는 것도 뜻밖이다.

장마 사이의 햇살은 더욱 따갑다.

토요일 오후. 백사장은 피서객들로 북적거린다.

포구는 그 끝에 아주 작게 자리잡고 있다.

"바다가 매립되면서 조류가 바뀌니까 물고기가 영 안 붙어요. 그저 배운게 뱃일이라 뭍일은 못합니다.

공항건설현장 날품팔이로 생계를 꾸려가는 어부들이 많아요. " 3대째 어부로 살아온 김기선 (44) 씨의 말이다.

60여척이나 됐던 어선이 절반으로 줄었다.

그나마 고기잡이라고 해봐야 잡어가 조금씩 잡힐 뿐 시원찮다.

피서객들을 대상으로 놀잇배를 띄워볼까 해도 제트스키.바나나보트.파워보트등을 동원한 외지 사람들에 밀려 한푼벌이도 쉽지 않다.

절망 끝에 희망인가.

최근들어 외지에 나갔던 젊은이들이 하나 둘씩 들어오기 시작했다.

처음엔 공항건설 공사장 취직을 위해 귀향했다.

그러나 을왕리 포구가 주말이면 바닷가 정취를 만끽하려는 연인들의 발길이 이어지면서 횟집.식당.민박집을 하려고 젊은이들이 들어온다.

"공항이 들어선다고 해도 을왕리포구는 그대로 남아있을 겁니다.

비록 만선의 꿈에 부푼 그런 포구는 아닐지라도…. " 용유동사무소의 젊은 공무원 유정상 (32) 의 소망이다.

21세기가 얼마 남지 않았다.

영종도 공항끝에 붙어있는 을왕리 포구. 선착장에 서서 서해를 바라보노라면 을왕리 포구의 미래도 보이는듯 하다.

< 이순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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