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일의 영어말하기 A to Z] 교실 영어만 잘하려는 생각을 버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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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인데 친한 사람들과 영어로 능숙하게 대화하는 꼬마 학생들을 자주 볼 수 있다. 너무 야무져 보인 터라 학교에 입학해서도 수업시간이나 말하기 대회 등에 참여하는 데 문제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집 안에서 주고받는 대화기술이 집 밖에서 필요한 의사소통 능력과 항상 비례하진 않는다. 말을 참 잘하는 집 똑똑이는 교실에서 의외로 천덕꾸러기가 될 수도 있다. 친밀한 관계에서 주고받는 대화영어는 수업이나 인터뷰 때 사용하는 영어와 다르기 때문이다.

teacher talk(교실에서 선생님이 하는 말)는 엄마나 친한 친구와 주고받는 대화와 형식이 다르다. 놀이영어로 수업하는 곳이 아니라면 대체로 주도적으로 말을 하는 사람은 선생님이다. 선생님이 내용을 먼저 전하거나, 학생에게 묻고, 학생이 짧게 답변한 내용을 받아서 다시 수업을 진행한다. 교실은 학생 편의대로 길게 말해도 되고, 상대방이 내 상황을 이미 잘 알고 있다고 가정하면서 대충 말하는 곳이 아니다.

취학 전부터라도 자녀들을 다양한 말하기 활동에 참여시키자. 부모도 때로는 선생님처럼 질문하면서 자녀가 평소 가정의 대화법과 다른 종류의 말하기를 경험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자꾸만 대화식으로 소통하려는 학생이라면 스토리보딩을 활용해 혼자서 길게 말하는 연습을 시키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스토리보딩은 중요한 사건을 간략하게 서술한 그림의 나열이다. 그림을 함께 그린 다음 부모와 아이가 돌아가면서 그림 순서로 내용을 발표한다. 설명이 끝나면 궁금한 점을 묻고 답하는 시간을 갖는다.

교실 영어는 익숙한데, 반대로 대화 영어가 익숙하지 않은 학생도 많다. 선생님이 있는 곳, 교실의 상황에서만 영어를 배운 학생들은 자연스럽게 말 차례를 주고받고, 상대방과 협력해 의미를 교환하는 실제적인 대화 영어가 잘 늘지 않는다. 대화를 배우려면 우선 말을 많이 주고받는 연습이 필요한데, 선생님이 주도적으로 진행하는 영어수업에서는 그런 대화 기술을 배우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대화 중에 서로 간섭도 하고, 주제도 바꾸며, 동등한 입장에서 말을 할 수 있는 능력은 교실 안의 수업만으로는 키우기 어렵다.

이런 학생들은 교실에서만 열심히 공부하면 영어회화를 잘할 수 있다는 기대를 먼저 버려야 한다. 교실 밖에서 자신을 잘 아는 가족과 친구와 편하게 만나 일상적인 소재를 갖고 대화를 반복적으로 나누는 연습이 필요하다. 연필을 쥐고 있지 않은 채 자신의 말을 비판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받아주는 상대와 대화를 나눌 기회를 찾아야 한다. 학생들은 대체로 교실 밖에서, 선생님이 없을 때, 자연스러운 대화를 더 잘 배운다. 찾아보면 교실 밖에서 영어로 말할 기회는 주위에 참 많다. 자꾸 교실에서만 공부하려는 습관을 과감하게 벗어나 다양하게 말할 수 있는 기회를 접해보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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