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운영의 나는 이렇게 읽었다] 화이트칼라 수난곡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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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 치열하던 시대 사회과학 책을 읽은 사람들은 ‘화이트칼라’에 일말의 죄스러움마저 느낀다. 구슬땀과 기름때 작업복의 블루칼라 앞에 하얀 와이셔츠가 그렇게 부끄러울 수 없었다. 그리고 ‘중간 계급’을 자처하면서도 유사시(!)에는 자본가 편에 붙어 잇속을 챙긴다는 기회주의적 처신에 대한 꾸지람 때문이었다. 공활(工活)이니 ‘위장 취업’이니 이제 실험실 표본처럼 박제된 언어가 되었지만, 당시는 아주 진지했으니 지식인으로 태어난 죄(?)를 그렇게라도 씻고 싶었기 때문일지 모르겠다.

그 ‘사치스런’ 기억은 벌써 사라졌다. 우선 제 코가 석 자여서 누구 앞에 부끄럽고 자시고 따질 형편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편이라고 굳게 믿었던 사람들이 오히려 깝대기를 벗기려고 달려드는 바람에 왕창 쇼크를 먹었다. 질 프레이저의 『화이트칼라의 위기』(한스미디어, 2004, 341쪽, 1만2000원)는 이런 수난에 대한 고발 기록이다. 현대는 화이트칼라를 ‘죽이는’ 시대다. 임금과 복지 혜택이 급격히 줄고 노동은 엄청 늘어나고 있다. 살고 싶으면 더 적게 받고 더 많이 일하라! 그게 생존의 모토가 되었다. 게다가 e-메일, 휴대 전화, 랩톱 컴퓨터, 수영장의 방수 전화기까지 온갖 첨단 기술도 어느 호들갑 시엠(CM)처럼 사람을 ‘쥑이기’보다는 죽이고 있다는 것이다.

전문직 종사자는 대부분 주당 60시간을 일한다. 그것은 직장에서의 계산이고, 귀가 후에도―심지어 휴가 중에도―e-메일과 음성 사서함의 잔무를 처리하고, 때로는 새벽 2시에도 고객의 전화에 응대한다. 하루 24시간, 한 주 7일 근무를 가리키는 ‘24/7’ 슬랭은 화이트칼라 세계의 자조적 한탄이 아니라 직장의 상식이 되었다. 그러나 보수는 계속 뒷걸음질이다. 어디로 옮겨도 먹고살 ‘포터블 스킬’ 보유자로서 당당히 ‘몸값’을 챙기는 지식 근로자, 즉 ‘골드칼라’의 1990년대 시간당 임금이 1970년대 대졸 사원의 초임보다 1.17달러나 줄었다니….

어쩌다가 이 꼴이 되었느냐고? 구조 조정이든, 감량 경영이든, 정리 해고든 과녁은 모가지 자르는 것인데 여기 당할 장사가 어디 있으랴. 회사 내부의 솎음으로는 모자라 회사끼리 손잡고 인수합병(M&A)을 벌여 뭉턱뭉턱 잘라낸다. 그러나 구조 조정은 하늘이 시킨 것이 아니라 사람이 하는 짓이다. 경기가 나쁘니 살길을 찾아야 하고, 기업이 살아야 종업원도 산다는 말씀은 옳다. 그러나 정리 해고가 기승을 부린 것은 경기 순환은 끝났다는―앞으로 불황 따위는 없다는―신경제 시대, 기업들이 망하기는커녕 천문학적 이익을 내던 ‘새로운 계약’의 시대였으니 살길 찾기 변명이 우습게 들린다.

여기 세 가지 잘못이 있었다. 첫째 “자르는 것이 장땡, 잘라야 산다”를 열창한 최고 경영자들의 폭거이다. 5000만달러 연봉으로 멀쩡한 사람 기죽이는 잭 웰치는 ‘중성자탄’으로 불리고, 직원은 소모품일 뿐이라고 당당히 외치는 앨 던롭의 별명은 ‘전기톱’이다. 건물은 놔두고 사람만 해친다는 중성자탄 악명이 왜 그를 따라다니며, 무엇을 그렇게 열심히 잘랐기에 그는 또 전기톱으로 불릴까? 둘째 이런 폭탄 세례와 톱질로 얼마의 생산성과 수익률 증대가 기대된다고 내갈기는 증시 분석가와 언론 해설자의 부화뇌동이다. 셋째 한탕과 떼부자 환상으로 거품 주가에 열광한 화이트칼라 자신의 실수가 있다. 사람을 내쫓고 인수합병을 밀어붙이는 억지 부양의 보복은―제 목을 겨눈 칼은―생각지 않고 “주가는 장땡, 올라야 산다”를 연호했기 때문이다.

아직 목이 붙어 있는 어느 여사원은 “좀더 자주 웃으세요. 해고되지 않아 감사하고 있다는 것을 윗사람들이 알 수 있도록 말입니다”(26쪽)라는 상사의 충고를 받았다. 인텔이라는 팻말만 보면 쫓아가 절이라도 하고 싶던 어느 중역은 “하루 16시간을 일했습니다. 일에 파묻혀 압사 당하는 기분이었습니다. 아내는 다른 방에서 자기 시작했죠”(224쪽)라고 고백했다. 해고 공포가 가장 강력한 경영 도구이며, 모든 근로자는 임시 직원이라는 생각을 끊임없이 주입하고, 직원 1500명이 e-메일 한 통으로 해고 통지를 받는 현실이 미국형 경쟁력의 주요 단면이라면, 우리가 기를 쓰고 따라갈 사회는 아니다.

그 희생자는 냉소와 분노를 넘어 ‘복수’를 다짐한다. 이렇게 되면 기업 조직이 아니라 음모와 배신이 판치는 마피아 소굴이다. 저자는 오히려 ‘낡은 지혜’를 당부한다. 예전과 달리 화이트칼라도 노동조합을 통해 연대와 단결을 도모하고, 경영자 역시 이들을 돈벌이 도구가 아니라 사람으로 대하라는 것이다. 생면부지의 출판사가 책을 보내왔기에 고맙게 읽었으나 뒷맛이 개운하지 않다. 원서 인용문의 참조 문헌을 빼버려 번역판을 ‘불구’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서 얼마의 비용과 수고가 절약되는지 모르겠으나, 그것이 필요하지 않은 독자에게는 본전이고 꼭 필요한 독자에게는 손실이다. 본전과 손실을 합치면 손실이 된다.

정운영(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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