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험 동물에 투자하면 인간에 혜택 돌아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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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지난달 30일 서울 광진구 화양동의 건국대 의생명과학연구동 8층 수술실. 수술팀이 주사기와 바늘을 바쁘게 움직이는 동안 뒤쪽 모니터에선 환자의 심박동 수를 알리는 숫자가 깜빡였다. 수술대에 오른 환자는 사람이 아니고 토끼였다. 유전병을 포함한 각종 질병 검사를 받아 걸린 질환이 전혀 없음을 확인한 일명 ‘무병(無病)토끼’다. 이날 수술은 토끼에 투여한 인간 관절염 치료제의 안전성을 확인하기 위해 이뤄졌다.

이 토끼는 지난해 완공된 이 대학의 ‘3R동물복지연구소’의 실험센터에서 자랐다. 이 센터는 실내온도는 물론 환풍·조도까지 동물의 성장에 알맞도록 컴퓨터로 통제된다. 모든 사육실은 무균 공간으로 국제 규격에 맞춰 설계됐다. 여기에 사육되는 동물들은 무균 사료를 먹고, 정기 건강검진을 받는다. 5000만원~1억원짜리 기기를 갖춘 검진실도 따로 있다. 수술실·실험실 등 8층 대부분을 차지하는 동물복지연구소를 짓는 데 100억원이 들어갔다고 한다.

이 연구소 건립의 산파역인 한진수 건국대 교수(49·수의과대·사진)는 실험실 동물 복지의 개척자로 통한다. 지난해 건대가 국내 최초로 도입한 ‘애완동물 사체’ 기증 운동과 헌혈 프로그램이 그의 작품이다. 산 동물이 각종 실습과 실험에 희생되는 걸 줄이기 위해 벌인 노력이었다.

그는 같은 해 동물학대를 방지하자는 취지의 개정 동물보호법이 나오자 이에 맞춰 낙후한 동물실험시설을 재설계했다. 그 공을 인정받아 지난해 연말 농림수산식품부 장관 표창을 받았다.

그는 일본 도쿄(東京)대학 실험동물연구소에서 ‘실험동물의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1993년 삼성생명과학연구소에서 동물 실험실과 실험 과정을 설계하다 이 분야에 뼈를 묻기로 결심했다”고 밝혔다.

동물실험에 왜 복지 개념이 필요한 것일까.

“10년 전 서울의 한 대학연구소에서 충격적인 실험장면을 봤어요. 연구원들이 실험용 토끼를 안락사 시킨다며 혈관에 공기를 주입하고 있더군요. 이는 안락사가 아니고 ‘잔혹사’입니다. 약품을 쓰지 않으니 경제적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혈관 속 공기 때문에 고통을 겪다 심장마비로 죽은 토끼를 활용한 실험은 과학적으로 무의미합니다.”

그는 “실험동물 복지가 이런 식이니 한국에서 동물실험을 바탕으로 쓴 논문은 국제학회에서 인정받지 못하기 일쑤”라고 지적했다. 국제학회에서 논문을 인정받으려면 동물실험 전에 윤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야 하지만 아직 이런 절차조차 없는 곳이 많다는 것이다.

“내로라하는 병원의 연구실에서 실험용 쥐가 유행성출혈열을 일으키는 바이러스에 오염돼 연구원 다섯 명이 감염되는 사고가 났던 게 불과 10년 전입니다. 그 뒤 대형 병원과 대학·국책연구기관 연구소의 동물실험실은 많이 발전했지만, 동물복지는 여전히 낙후한 실정입니다.”

동물복지에 신경 쓰는 것을 ‘돈 낭비’라고 비판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그는 “실험동물 복지는 인간 복지를 위해서도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의약품이나 의료시술의 효과, 안전성을 검증할 때에 반드시 필요한 효자가 실험동물입니다. 복잡한 유전공학도 실험동물이 없으면 안 되고요. 실험동물의 복지에 신경 쓰면 정확한 실험 데이터로 반드시 보상받을 수 있습니다.”

정선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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