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기행>5. 성산 일출봉.차귀도 (1)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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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1면

까치 오혜성을 기억하십니까.풋풋한 직모의 머리카락과 꿰뚫는 듯한 눈빛을 가진 터프가이.그러나 최엄지에 대한 사랑 앞에선 프로야구 스타로서의 삶조차 새털이었던 낭만주의자. 이현세가 83년 만화'공포의 외인구단'에서 창조한 이 독특한 캐릭터를 이장호는 영화 '외인구단'(86년 제작,주연 최재성.이보희)에서 성산 일출봉(제주도남제주군성산읍성산리)의 눈부신 햇살로 강렬하게 형상화 했다.이렇게 태어난 까치는 차귀도(제주도북제주군한경면고산리)의 깎아지른 절벽 밑 파도속에 투혼을 적시는등 강렬한 개성으로 일약 80년대 대중문화의 우상이 됐다.영화'외인구단'(감독 이장호.원작 이현세)중 가장 인상적인 지옥훈련장면이 바로 제주도에서 촬영됐다.

지난해 제주를 찾은 관광객은 약38만명.그중 몇몇,특히 20~30대 젊은이들은 해풍에 실린 까치의 노래를 듣기도 했을 것이다.

“난 네가 기뻐하는 일이라면 뭐든지 할 수 있어”(작사 이장호.작곡 정성조)로 시작되는 애절한 까치의 세레나데에선 바다내음이 묻어난다.

제주도 기생화산중 하나인 성산 일출봉의 꼭대기는 흡사 태초에 해가 담겼을 법한 곳.바닷가에 평치돌출로 솟은 바위산 등허리를 타고 20분정도 가파르게 오르다 보면 움푹 패인 초원이 널찍하게 펼쳐진다.넓이가 3만여평,하늘위의 야구장이다.99개의 기암이 초원을 굽어보며 펜스처럼 둘러쌓여 한층 야구장답다.이곳에서 미친 사람처럼 치고 달리며 야구를 연습하던 6명의 외인구단 선수들.관중없는 구장이란 애초 쓸쓸하다.하물며 바람소리가 환호며 관중이라곤 풀과 나무 뿐인 곳에서의 야구란….촬영감독 박승배의 솜씨가 일품이다.

카메라는 이'공중야구장'의 전경에서부터 잽싸게 줌인해 초원중앙으로 파고들면서 6명의 표정을 효과적으로 잡아낸다.욕망과 썰렁함.그것은 이 영화의 화두면서 일출봉의 느낌이다.일출봉을 올라본 누군들 정상의 넓이에서 한순간 상쾌한 허무를 느끼지 않겠는가. 외인구단은'따라지 인생'들이었다.실력이 모자라거나 신체적.성격적인 장애로 프로야구에서 탈락한 쓰라림을 만회하고자 지옥훈련을 자청한다.

발목에 족쇄를 찬 채 개펄에서 뒹굴고 절벽을 오르내리는 모진 훈련장면은 차귀도에서 촬영됐다.

고산리 자구내포구에서 뱃길로 10분거리인 차귀도는 4개의 섬으로 이뤄졌고 표정이 퍽 복합적이다.본섬인 죽도가 녹색 양탄자처럼 부드러운 반면 그 왼쪽의 지실이와 생이섬(새섬)은 작지만 험한 바위이다.촬영무대는 이 바위섬.차귀도는 이같은 풍부한 표정과 도내에서도 비교적 덜 알려졌다는 미개발을 잇점으로 최근'진짜 제주'를 원하는 관광객들의 발길이 잦다.

절해고도에서 돌아온 외인구단은 결국 불사조처럼 53연승을 구가하며 멋지게 자신을 증명한다.그러나'외인구단'의 메시지가“강한 것은 아름답다”만은 아니다.진짜 메시지는 까치의 산화이다.그는 영원의 여인인 엄지를 위해 선수의 생명인 두 눈을 희생한다.마키아벨리즘을 버리고 사랑을 얻은 그들.제주에서의 여행이나 사랑이 바로 그래야 하지 않을까. 제주=임용진 기자

<사진설명>

외인구단에겐 시련의 섬.그러나 실제 차귀도는 한적하고 아름다운 휴양지이다.왼쪽섬부터 지실이.생이섬(새섬).죽도.누운섬(와도).아래 사진은'하늘의 야구장'을 이룬 성산 일출봉. 사진=박경배<사진작가>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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