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장밋빛 환상' 심는 수도 이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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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요즘 도시계획이나 토목.건축사업을 하는 사람들은 마치 제철을 만난 듯 들뜬 기분일 게다. 수도 이전을 비롯한 도시개발 계획이 이렇게 한꺼번에 쏟아진 예는 역사상 어떤 나라에서도 찾기 힘들기 때문이다. 정부는 국회.대법원을 포함한 국가기관 85개를 옮기는 신행정수도 건설뿐 아니라 200여 공공기관을 비수도권 지역으로 분산 이전시키기 위해 전국 곳곳에 10~20개의 신도시를 건설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충청권으로 수도를 이전한다는 신행정수도 건설계획도 따지고 보면 초대형 신도시 개발사업인 셈이다.

필자도 도시계획을 전공하는 한 사람으로서 이 분야의 '밥그릇'만을 생각한다면 수도 이전과 분산에 따른 신도시 건설을 쌍수들고 환영해야 마땅할 것이다.

그런데도 도시계획가의 양심에 비추어 자칫 이런 신도시 개발이 지역 균형발전을 선도하는 특효를 지닌 만병통치약처럼 국민에게 장밋빛 환상만 심어주는 것이 아닌지 오히려 더욱 큰 걱정이 앞선다.

신도시는 지역성장과 발전의 결과물이지 결코 출발점이 될 수 없다. 신도시는 지역의 성장.발전에 따라 기성 도시에서는 충분히 수용할 수 없는 새로운 도시기능을 담아내기 위한 물리적 그릇에 불과하다. 즉 밥상에 비유하자면 신도시는 음식을 담는 그릇에 불과하며, 음식이 풍부해지고 그릇이 부족해짐에 따라 새로운 그릇을 준비하듯 신도시를 건설하는 것이다. 먹을 만한 음식이 많지 않다면 밥상에 새로운 그릇을 놓아본들 아무런 쓸모가 없다. 정작 중요한 것은 음식의 양과 질이지, 그릇의 개수가 아니기 때문이다.

지방 활성화라는 밥상을 차린다면 멋진 그릇을 준비하기 전에 어떤 음식을 만들 것인가 먼저 고민해야 한다. 음식을 맛있게 만들어 새로 만든 멋진 그릇에 담아 먹는다면 음식의 맛은 더할 나위없이 좋을 것이다. 그러나 그릇만 멋지다고 결코 음식이 맛있는 것은 아니다. 중앙정부가 손수 많은 돈을 들여 정부 기능의 이전과 분산이라는 음식을 신도시라는 멋진 그릇에 담아 배분해 준다고 하지만, 과연 이것이 밥상에 어울리는 음식인지부터 따져봐야 한다. 한식 식단에 양식 스테이크를 추가해본들 반드시 먹을 만한 음식이 많아지거나 음식의 맛이 좋아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우선 각 지방의 특성에 맞는 식단을 개발하는 일에 정책의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단지 지방마다 획일적으로 분산 배분된 중앙정부 기능을 담아내기 위한 신도시라면 지역사회에 뿌리내리지 못한 고립된 섬으로 남게 될 수도 있다.

신도시 건설은 물리적으로 당장 눈에 보이는 가시적 성과물을 만들어 낼 수 있으므로 누구나 그 달콤한 유혹에 쉽게 빠질 수 있다. 그렇지만 과거 많은 지역개발 정책이 실패한 이유는 대형 건설사업과 같은 물리적 성과에만 집착했기 때문이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이 선거공약으로 내걸어 개발했던 광주의 첨단산업단지가 수요가 뒷받침되지 못한 채 오늘날까지 빈 땅으로 남아 오히려 지역경제에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교훈으로 삼을 필요가 있다.

벌거벗은 산을 울창한 나무숲으로 가꾸기 위해서는 인내심이 필요하다. 조급한 마음에 우선 나무를 옮겨 심는다면 당장 겉으로 보기에는 산이 푸르러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토양이 척박하다면 나무들은 오래가지 않아 고사하고 말 것이다. 나무들이 잘 자라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토양이 비옥해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토양을 비옥하게 만드는 일이 나무를 옮겨 심는 일에 비해 당장 눈에 띄는 성과도 없을 뿐 아니라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정책적으로 매력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그렇지만 당장의 정책적 인기에 급급하지 않고 토양을 개량해 나간다면 구태여 나무를 옮겨 심지 않아도 궁극적으로 스스로 풀을 키우고 나무를 키울 수 있는 건강한 숲을 만들 수 있다. 이것이 진정 각 지역의 토양에 뿌리를 내린 자생적이고 특성화된 지역 균형발전의 길이며, 신도시 건설은 그 결과를 맺는 꽃과 열매가 되어야 할 것이다.

최막중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도시계획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