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마약·BMW … 없는 게 없는 지하 백화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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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BMW 7000달러(약 970만원), 중국제 오토바이 600달러, 양 한 마리 100달러. 이스라엘군의 주요 공격 목표물이었던 가자지구 땅굴을 이용한 운송료다. 사용료와 운송대행 수입으로 6개월 만에 100만 달러를 번 업자도 있을 정도로 가자 땅굴은 상업화돼 있다.

이집트와 연결된 땅굴은 가자지구의 지하경제를 떠받치는 생명선이다.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FT)는 3일(현지시간) ‘가자 땅굴의 경제학’ 현장을 르포했다. 모하마드는 가족사업으로 지하 27m에 길이 190m짜리 땅굴을 파고 이집트와 가자지구의 밀수 거래를 중개하고 있다. 가자지구에서 민간인이 운영하는 가장 큰 땅굴이다. 가자 주민들은 “600m가 넘는 땅굴도 있으며, 중소형까지 합하면 최대 1000여 개의 땅굴이 있다”고 말한다. FT는 땅굴 업자의 말을 인용, “무장 정파 하마스는 취급하는 물자의 부피가 커 차량 통행이 가능할 정도로 큰 땅굴을 따로 운영한다”고 전했다.

이스라엘과 가자지구를 통치하고 있는 하마스가 지난해 6월부터 한시적으로 휴전에 들어가면서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봉쇄가 강화됐다. 하지만 모하마드 같은 밀수꾼들에겐 대박을 터뜨릴 기회였다. 땅굴이 무기뿐 아니라 생필품·식량까지 유통하는 물류 통로가 됐기 때문이다. 평균 운송료는 40㎏당 200달러, t당 5000달러지만 품목별로 천차만별이다.


모하마드는 “간단한 생필품에서 발전기·양가죽 점퍼·노트북 컴퓨터·송아지·양·마약과 무기 등 취급 안 하는 물건이 없다”며 “BMW 차량도 7000달러만 주면 이집트에서 사서 분해한 뒤 가자지구로 들여와 다시 조립할 수 있다”고 말했다. 최근엔 땅굴 업자들이 난립하면서 가격 인하 경쟁이 붙었다. 모하마드는 “물건 40㎏당 100달러에 주문을 받는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그는 “가자 봉쇄가 풀린다면 사업적으론 불행한 일”이라며 “지난 6개월 동안 경기가 참 좋았다”고 말했다.

유엔은 지난해 10월 보고서를 통해 “가자지구에서 땅굴이 일종의 산업으로 발전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스라엘 언론들은 “이 땅굴을 통해 연간 6억5000만 달러(약 8900억원) 상당의 물자가 오간다”고 보도했다.

모하마드는 “일자리 없는 가자지구에서 땅굴은 청년들에게 고용 기회를 주는 일터”라며 “땅굴 1m 파는 데 임금이 100달러”라고 덧붙였다.

땅굴 경제를 유지하기 위해 밀수꾼들은 이집트 관리들을 매수한다고 FT는 전했다. 이 때문에 이스라엘 측은 이집트와 가자의 접경인 필라델피 루트 지역에 다국적군을 파견해 무기 밀매를 단속하자는 휴전안을 주장해 왔다. 이런 비난을 의식한 이집트는 최근 가자지구 접경에 땅굴을 찾아내고 밀수를 감시하기 위한 폐쇄회로(CC) 카메라와 동작감지기를 설치했다고 로이터통신이 보도했다.

정용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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