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북한 시론

북 ‘벼랑 끝 전술’ 이젠 효과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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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올해 들어 북한이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 조성에 골몰하고 있다. 군복을 입은 총참모부 대변인이 한국과의 전면 대결태세 진입을 운운했고, 며칠 뒤엔 조국평화통일위원회가 나서 남북 간 정치군사 합의의 전면 무효화를 선언했다. 북한 외교부는 미국과의 수교 이후에나 비핵화를 생각할 수 있고, 그것도 6자회담이 아닌 핵보유국 사이의 핵 군축회담을 통해 한다는 논리를 전개했다. 더욱이 대포동2호 미사일 발사를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 2006년 핵실험 이후 중단됐던 벼랑 끝 외교가 재가동되고 있다.

북한의 과격한 행동이 그들 주장대로 또는 우리 사회 일각의 지적처럼 이명박 정부의 대북(對北) 강경정책 탓인가. 북한 경제를 10년 내 3000달러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한 대규모 경제지원 프로그램인 비핵·개방·3000 구상을 엄격한 상호주의에 입각한 대결정책이라 한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가 개성공단, 금강산·개성 관광 등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대북사업을 모두 계승했고 남북교역도 줄어들기는커녕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우리 관광객이 금강산에서 피살되는 날에도 이 대통령은 국회에서 6·15, 10·4 공동성명을 이행할 뜻임을 밝힌 바 있다. 따라서 북한의 과격행동은 한국 정부보다는 미국을 향한 것이라고 봐야 한다.

1993년 출범했던 미국의 클린턴 정부는 선거전과 정권인수 과정에서 직접협상과 당근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대북정책을 검토했다. ‘피는 동맹보다 진하다’는 취임사로 시작한 김영삼 정부도 비전향 장기수 이인모씨를 북한에 돌려보내는 전향적인 대북정책을 취했다. 그러나 북한은 남북협상을 보이콧하는 등 강경으로 나왔다. 준전시 상태를 선포하고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를 선언했다. 일본 열도를 향해 노동미사일을 발사했고 결국 미국과의 고위급회담을 얻는 데 성공했다. 또한 한반도의 초긴장 상황을 활용, 김정일은 국방위원장에 취임해 북한 군부를 완전히 장악했다. 후계구도의 완성과 함께 오늘의 선군체제 골격이 당시 만들어진 셈이다.

 현재 북한의 행동패턴은 16년 전과 놀라울 정도로 유사하다. 미 오바마 정부가 대북 직접대화를 강조하고 있는 상황에서, 북한은 전면 대결태세 운운하면서 군사적 긴장을 조성하고 미사일 카드를 다시 들먹이고 있다. 여기에 승부수를 걸겠다는 각오다. 벼랑 끝 외교를 통해 재미를 보았던 과거 경험에서 초장에 기선을 제압해 핵무장과 대미 관계정상화를 동시에 획득하는 파키스탄식 해결을 이루겠다는 것이다. 대내 정치적 측면도 마찬가지다.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을 조성해 대내 결속을 꾀하고 체제에 대한 지지를 동원하는 수순을 밟을 것이다. 또 미국과의 담판 과정을 극대화해 궁극적으로는 후계구도를 구축하려 할 것이다.

  그러나 북한의 이러한 수법은 너무 구태의연하다. 그래서 아무도 놀라지 않는다. 힐러리 미국 국무장관은 비핵화 이후에야 북한과 수교할 수 있다고 이미 못박았다. 대량살상무기 확산을 위반한 북한 회사들에 대한 제재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북한 당국은 핵실험으로 군사대국이 되었고 이제 2012년까지 경제대국까지 이루어 강성대국을 완성한다고 주민들에게 선전해 왔다. 이번에 전례 없이 벼랑 끝 전술의 빈도와 강도를 높이는 것도 미국과의 담판을 빨리 해 ‘2012년 목표’를 달성하겠다는 의도가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는 북한이 바라는 것을 얻을 수 없다는 게 문제다. 세계적인 경제위기에서 어떠한 나라도 남을 돕기가 어려워졌다. 이러한 상황에서 가장 취약한 국가는 해외지원에 의존하는 북한과 같은 나라다. 특히 북한을 도우려는 남쪽 동포들마저도 지쳐 있다. 운다고 떡 줄 처지가 아닌 것이다. 북한은 벼랑 끝 전술의 효능이 점차 사라지고 있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윤덕민 외교안보연구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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