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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인일(人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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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당(唐)나라 시인 고적(高適)은 두보(杜甫)보다 열 살 많은 연장자. 그러나 둘은 매우 친했다. 고적은 두보와의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그의 시재(詩才)를 특히 아꼈다. 전란을 피해 지금의 중국 쓰촨(四川)에서 이리저리 떠돌던 두보에게 벼슬자리에 있던 고적은 든든한 후원자였다.

어느 해 정월 초이레 고적은 두보에게 시를 적어 보낸다. ‘올해 사람 날에는 그저 추억만을 그리니/ 내년의 사람 날에 그는 어디 있을까(今年人日空相憶, 明年人日知何處)’. 시 속의 구절이다. 두보는 눈물로 이 시를 읽는다. 나이를 잊은 두 사람의 우정이 진하게 배어나오는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여기서 나오는 인일(人日)은 음력 정월 초이레를 ‘사람의 날’로 정한 동양의 전통에서 비롯했다. 보통 인일, 또는 인날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음력 초이레를 왜 사람의 날로 정한 것인지 정확한 이유를 밝히기는 어렵다. 기록으로 볼 때 중국에서는 한(漢)대 때 이미 이날을 기념했던 것으로 나타나 있다.

일본에서도 이날을 ‘진지쓰’라고 부르면서 전국적으로 범죄자에 대한 형 집행을 하루 동안 멈추기도 했다. 에도(江戶)시대에 정착한 이날에는 일곱 가지 야채를 넣어 끓인 죽을 먹는 습관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한반도에서도 이날은 특별했다. 고려시대 이래 인일은 줄곧 왕과 신하, 민간의 모든 사람이 특별히 기념하는 날이었다. 궁중에서는 왕이 신하들에게 은으로 만든 머리 장식을 하사하는 습속이 있었다. 때에 따라 왕은 요즘의 특별상여급에 해당하는 녹패(祿牌)를 신하들에게 내리는 경우도 있었다.

민간에서는 이날 하루 동안 일하지 않고 쉬는 습속이 있었다. 경상남도 지역에서는 초이레가 사람의 날, 다음 여드레는 곡식의 날이라 해서 ‘칠인팔곡(七人八穀)’이라는 성어를 만들어 기념했다.

조선시대에는 특히 사람의 날에 귀중한 인재를 뽑자는 차원에서 ‘인일제(人日製)’라는 특별 과거를 치렀으니, 이날이 단순히 요식적인 행사에 머물지 않고 사람을 귀히 여겨 소중히 대하자는 취지의 제도로 정착했음을 알 수 있다.

지난 1일이 음력 초이레. 이제 동양에서 잊혀진 사람의 날이었다. 마침 텔레비전에서는 끔찍한 살인혐의자 강호순이 카메라 앞에 나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했다. 연일 그의 여죄 밝히기만이 화제다. 악마 같은 그의 범죄 행각이 큰 문제이기는 하지만 사람의 가치와 소중함을 잊어가는 우리 사회 전체 수준에는 문제가 없는지 생각해볼 일이다.

유광종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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