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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문화가정 여성 원어민강사

중앙일보

입력


필리핀에서 와 다문화가정을 꾸린 마르카이다·로렌조·아카윌리(왼쪽부터)씨는원어민 영어 강사로 활약하고 있다. "한국 어린이·주부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일이 즐겁고 보람았다"고 입을 모았다.

프리미엄 황정옥 기자 ok76@joongang.co.kr

“한국에 온지 벌써 11년째예요.” 하이즐록산 로렌조(35)씨가 유창한 한국어로 입을 뗐다. 5살·11살 두 자녀를 둔 로렌조씨는 지금의 남편을 만나 필리핀에서 한국으로 건너왔다. 한국 생활 10년차인 에드랄린 마르카이다(36)씨와 4년차 판초 리메디오스아카윌리(36)씨도 필리핀이 모국. 세 사람은 모두 어린이와 성인을 대상으로 영어를 가르치는 어엿한 원어민강사다.

 서울 송파구에서는 이들 말고도 많은 다문화가정 여성들이 원어민강사로 나섰다. 지난해 10월 송파구 다문화가족지원센터가 구의 예산을 지원받아 ‘다문화가정여성 원어민강사 육성 프로그램’을 실시한 것. 영어·중국어·일본어 능력을 검증 받은 12명의 다문화가정 여성들은 한 달 간 교수법에 관한 교육을 받고 잠실4동·가락본동·가락1동 주민센터 등에 파견됐다. 송파구 다문화 가족지원센터 오영숙 팀장은 “어린이·성인반 강의 개설 후 정원을 초과할 정도로 신청이 몰렸다”며 “특히 수요가 많은 영어강사를 추가로 교육하고 있다”고 밝혔다.

 2기 강사양성교육을 받고 수업을 시작한지 이제 한 달 째인 마르카이다씨는 “처음엔 강의를 하는 게 어려웠는데 점점 재미가 붙는다”며 “어떻게 하면 재밌게 수업할 수 있는지, 어린이와 어른의 특성에 맞는 수업은 무엇인지 등을 교육받은 것이 매우 유용하다”고 말했다. 필리핀에서 10년 동안 초등교사로 일했던 아카윌리씨도 한국에서의 수업은 어렵기만 하다. “한국어로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는 내용이 나올 때 아주 난감해요. 그래도 제가 쩔쩔맬 때마다 대신 한국어로 다른 학생들에게 설명해주는 할아버지 학생이 계셔서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요.(웃음)”

 로렌조씨는 한국에서 어린이집 교사 생활을 했던 경험을 살려 5~7세 유아반 및 성인반 수업을 맡고 있다. 그는 “유아반에선 학습위주 수업보다 알록달록한 교재 등을 활용해 재미있는 놀이수업을 하려 노력한다”고 설명했다. 교구를 직접 만들다보니 시간·비용·노력도 만만찮게 드는데, 초등 4학년 아들이 든든한 지원군이라고. 로렌조씨가 “정작 내 아들은 영어 공부를 싫어해 걱정”이라며 웃자 에드랄린씨가 “우리 아들도 마찬가지”라며 거든다. 영락없는 한국 아줌마의 모습이다.

 이들은 어린이 강좌에서는 게임·노래·동화구연 등으로, 성인 강좌에선 어휘·회화·역할극·팝송 등으로 영어를 가르친다. 주부가 대부분인 성인 대상 수업에선 오히려 한국의 문화·언어도 배워간단다.

 원어민강사 육성 프로그램으로 이들은“경제적 안정은 물론, 주변 인식의 변화라는 선물을 얻었다”고 입을 모았다. 자신의 아이들이 엄마를 소개할 때 ‘선생님’이라고 하면서 뿌듯해하더라는 것이다. 생김새가 조금 다르고 한국어가 서툰 엄마를 창피해 할까봐 걱정이 많았던 터다.

 수업에 관한 이들의 열의는 여느 전문강사 못지않다. 교재연구와 교구제작 등으로 자정을 넘기기가 일쑤다. 로렌조씨는 “학생수준이 제각각이라 수업 준비도 까다롭다”며 “영어를 잘하는 학생도 많아 준비를 더욱 철저히 하느라 새벽 3시까지 연구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좀더 재미있는 수업을 위해 끊임없이 교수법을 고민하는 것은 물론이다.

 “집안 살림과 병행하느라 힘들지만 가르치는 일이 마냥 즐겁다”는 이들. 로렌조씨가 웃으며 말했다. “용인에서 잠실까지 제 수업을 들으러 오는 은퇴 교수가 계셨어요. 날씨가 따뜻해지면 다시 오겠노라고 했는데… 곧 다시 볼 수 있겠죠? 더 좋은 수업을 준비해 두어야겠어요.”

다문화가정 원어민강사의 수업은 해당지역 주민자치센터에서 신청할 수 있다.
주 2회 1시간씩 수업에 월 1만 5000원.


프리미엄 최은혜 기자 ehcho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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