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권무림>제2부 5. 수원논무(水原論武) (1)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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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수원성은 난데없는 열기로 들끓었다. 전 중원의 인마(人馬)가 몰려들었다. 주루며 객잔이며 밀려드는 손님을 돌려보내느라 진땀을 뺐다.재여무림의 후계자 선발을 위한 첫 논무(論武)가 이곳서 열리고 있기 때문이다.

논무(論武)는 상대의 무공허점을 입으로 파해하고 공격하는 것.실제 손과 칼을 맞대고 싸우지는 않으나 누가 더 훌륭한 무공을 익히고 있는가의 우열이 쉽게 드러난다는 점에서 무림인들에겐 실전보다 더 치명적인 것으로 여겨졌다.논무의 결과에 따라서는 신한국방 후계자가 바뀔 수도 있다는 얘기까지 공공연히 나돌았다.

무력 97년 일곱번째 달을 뜨겁게 달군 신한국방 용들의 마지막 승부처 12대논무(十二大論武),그 시작이 바로'수원논무'였다.

6룡의 표적은 회창객이었다.그중에서도 가장 신랄한 공격을 펼친 것은 수성객.그는 새로 창안한 파죽류(破竹流)를 들고 나왔다.전적으로 회창객을 상대하기 위한 무공이었다.이제 완성단계에 들어갔다는 대통합류(大統合流)도 덧붙여졌다.

“호남무림의 대부 대중검자가 절치부심의 칼을 갈고 있다.이길 사람은 영남무림의 힘을 모을 수 있는 나밖에 없다.방주자리에서 쫓겨난 회창객의 판관필은 수수깡에 불과하다.내가 익힌 파죽류(破竹流) 한방이면 박살나고 말 것이다.” 인제거사는 간판무공인 세대교체공을 줄기차게 펼쳤다.그는 민심방심일체식을 주로 사용했다.그가 주유천하를 통해 익힌 이 초식은 민심과 방심(幇心)을 하나로 묶는 무공이었다.

“선작 오십가자 필패(先作 五十家者 必敗)라.먼저 오십 집을 지은 자는 반드시 지는 법.수성은 창업보다 어려우니 앞서간 자는 방심해 뒤로 처지고 뒤처졌던 자가 앞서게 되리라.” 찬종검도 가세했다.

“방내 이백오십삼개 당(堂) 당주(堂主)들은 선택하라.회창객의 수하가 돼 구차한 목숨을 연명할 것인가,나와 함께 대도무림천하를 이룰 것인가.나는 한사람의 절대자가 아니라 다수의 현자(賢者)들이 연합해 집단으로 경영하는 무림을 만들리라.명심하라.너희가 살고 신한국방이 사는 길은 찬종검을 선택하는 것뿐임을.” 자신을 겨냥한 공격이 계속되자 회창객도 반격에 나섰다.내 이제까지 방주의 신분이라 심한 공격은 자제해 왔다.그러나 이젠 홀가분하다.너희들이 내 대세공(大勢功)을 한 초식이나 막아낼 수 있으랴.그는 대세공의 위력을 강조했다.

“내가 방주로 있던 석달간 너희들은 나를 지독히도 흔들어댔다.그러나 눈이 있는 자 보라.대세는 결코 흔들리지 않는 법.당주(堂主)들은 도도한 흐름을 거스르지 말라.영남무림단합공은 웃기는 소리다.차기 무림지존대회에선 결코 무림분열이 있어서는 안된다.재여무림이 앞장서 무림의 분열을 조장한다면 백성이 돌아설 것이다.민심은 곧 천심이니,하늘의 도리를 따르는 자 흥하고 이를 거스르는 자 망하리라(順天者興,逆天者亡).전 강호백성이 믿고 따를 자 여기 나말고 누가 있겠는가?” 침묵을 지키고 있던 일우(一牛) 병렬공이 나섰다.

“나는 너희 잡룡과는 다르다.황소걸음이란 말을 아는가.묵묵히 자신의 무공을 갈고닦은 정통 무림인이 신한국방의 후계자가 되는게 이치다.잡학과 요설로 가득한 자칭 용들의 진흙탕 싸움에 지친 방도(幇徒)들이여,나 일우(一牛)가 있음을 기억하라.” 수원논무는 기선제압을 노리는 용들의 사활을 건 싸움터였다.여기서 용들은 박학무식(博學武識)을 뽐내고 자신의 무공이 다른 누구보다 강함을 입증해야 했다.

누가 실제 강한가보다 누가 강해 보이는가가 중요했다.치고 박는 격투기보다 더 살벌하다는 논검비무(論劍比武),논무(論武)의 어려움이 여기에 있었다.논무가 진행되는 동안 다시 탈락자가 생길 것이다.

그러나 논무열기가 한창 뜨거웠던 이날,무림경제를 살리고 민생을 안정시키겠다며 시작된 임시무림의회는 잔뜩 빈자리만을 남긴채 여전히 공전(空轉)을 거듭했다.

金心은 回心의 미소를 짓다

“역시 김심(金心)입니다.신한국방 후계자는 결국 공삼의 선택에 의해 결정날 것입니다.” 종필노사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자민단 부단주인 용환도인의 지적은 정확했다.회창객의 방주직 사퇴와 정발협의 해체라-.공삼이 지난달 난데없이 서역행을 서두를 때부터 짐작했던 일이다.불행하게도 이놈의 예측은 너무 잘 맞아서 탈이란 말야.“이렇게 되면 수성객이 우리에게 넘어오기는 힘들게 됐다는 얘긴가?”“김심은 일단 수성객입니다.물론 인제거사의 대약진이 있을 경우 사정이 달라질 수도 있겠지만.”“회창객이 이겨낼 수 있을까?”“어떤 경우에도 쉽지는 않겠죠.그러나 가능성은 반반입니다.시간이 너무 짧은데다 회창객이 그간 구축해 놓은 세력이 워낙 철옹성같아 공삼으로서도 섣불리 움직이진 못할 테니까요.” 종필노사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회창객의 승리는 자민단에겐 최악의 상황이 될 것이었다.그러나 수성객이 이기는 것도 곤란했다.수성객이 최근 내각공대연합에 대해 예전처럼 성의를 보이지 않는 이유도 짐작할 만했다.이제 조금 가능성이 생겼다 이거지.재여무림의 후계자가 되면 나의 내각공은 필요없다는 뜻이겠지.사람은 누구나 어려웠던 때를 쉽게 잊는 법이니. 이렇게 되면 자민단의 선택도 조금 달라져야 했다.

“대중검자와의 회합을 준비해 주게.빠를수록 좋네.” 얻은 者와 잃은 者

수성객의 표정이 모처럼 환해졌다.시간이 좀 걸리기는 하겠지만 모든 것은 내 뜻대로 될 것이다.목적하던 바 두가지를 다 얻었다.회창객이 쫓겨나고 신임방주가 임명됐다.'김심(金心)의 전언자' 광일소자가 활발히 움직이고 있다.해체된 정발협은 결국 내게 올 것이다.유룡이 넘보고 있는게 걸리긴 했지만.장유유서의 무림에서 선배가 무시당하는 일은 생기지 않을 것이다.

'대나무를 깨는 전문무공'파죽류(破竹流)도 완성됐다.대통합류도 완성 직전이다.수원성을 시작으로 12대 논무가 진행되면서 온 천하의 무공과 무림을 한데로 엮는 대통합류는 완성되리라.파죽류로 회창객을 묶어놓고 대통합류로 최후의 일격을 가하리라.벌써 자신의 발 아래 쓰러지는 회창객의 모습이 보이는 듯했다.수성객의 호탕한 웃음이 대명천지를 울리는 듯했다.

회창객은 만족했다.하나를 얻고 하나를 잃었다.잃은 것은 작되 얻은 것은 크니 이 어찌 남는 장사가 아니랴.반대했던 신임방주의 임명은 작은 것이되 정발협(正發俠) 해체는 큰 것이라. 새 방주 임명을 놓고 '공삼이 회창객을 버렸다'는 말이 나왔지만 대붕(大鵬)의 뜻을 참새떼들이 어찌 짐작이나 하랴.눈엣가시처럼 속을 썩이던 정발협의 해체는 전적으로 공삼이 나 회창객의 얼굴을 봐서 지시한 것이었다.이것을 보고도 공삼의 뜻이 어디 있음을 모르는 자들은 바보가 아니면 천치중 하나일 터였다.가장 불쌍한 것은 수성객이었다.

“공삼이 본격적으로 정발협 수하들을 보내 자신을 도울 것이라고.흥,어림 없는 소리.이미 공삼이 나와 밀약(密約)을 맺었음을 만천하에 공개라도 하고 싶군.” 행여 공삼이 자신과의 밀약을 깬다 해도 개의치 않는다.회창객은 자신 있었다.사실상 싸움은 끝나 있었다.때가 되면 모두가 그것을 알게 되리라.혼자 답안을 들고 시험문제를 푸느라 끙끙대는 다른 사람을 지켜보는 것처럼 즐거운 일이 어디 있으랴.회창객의 요즘 심정이 바로 그것이었다.

<이정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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