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거래신고제 두달째…과녁 빗나갔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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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 "외환위기 때보다 고통스럽습니다. 매물이 워낙 많아 소화불량 상태가 오래갈 것 같아요."서울 노원구 상계동에서 만난 공인중개사마다 한숨을 짓는다. 지난해 10.29 부동산대책 이후 거래가 줄고 매물이 늘더니 이곳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주택거래신고제 (시행 4월)의 불똥이 튀어 일대 아파트의 거래가 뚝 끊어졌다.

# 서울 강남구 도곡동 타워팰리스 단지에 있는 한 부동산 중개업소에 기자가 전화를 걸었다. "요즘 매물이 많이 돌고 있죠"라는 물음에 공인중개사는 "웬 걸요, 주택거래신고제 이후에 오히려 물건이 줄었어요"라고 응대한다.

지난해 하반기 각종 부동산 규제정책이 본격 시행된 이후에 빚어지는 아파트 거래 시장의 모습이다. 강남권 등을 겨냥한 부동산 규제책이 과녁을 벗어나 상대적으로 상승폭이 작았던 비강남권 서민아파트 값을 떨어뜨리고 매물을 쏟아내게 만들고 있다.

서울 노원구 상계.중계동 아파트단지는 매물이 넘쳐 거래가 안 되는 대표적인 곳이다. 중개업소마다 매매 물건만 200~300개(중복 포함)씩 갖고 있다. 상계동 L부동산 관계자는 "지난해 10.29 대책 당시부터 물건이 늘어나더니 지금은 두 배가 넘었다"며 "투자 차원에서 매입한 사람들이 매물을 마구 내놓았기 때문"이라고 풀이했다.

이에 따라 이사를 하거나 급히 팔아야 하는 실수요자들이 거래가 안 돼 많은 피해를 보고 있다.

인근 K공인 金모 사장은 "한도를 넘은 매물을 보고 누가 사려 하겠느냐"며 "실수요가 많은 지역의 거래를 막아버리는 시장왜곡 현상이 빚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강서구 가양동 도시개발아파트 단지도 상황이 비슷하다. 가양동 H공인 관계자는 "10.29 이후 매물이 늘어나 지금은 매매물건만 업소당 50여건씩 쌓여 있다"며 "특히 10~18평형짜리 소형 물건이 많은데, 임대용으로 사둔 투자자들이 처분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10.29 직전 1억2000만원이던 가양동 도시개발2단지 18평형은 현재 1억1000만원을 밑돈다.

구로구 구로동 주공1,2차단지(2136가구)에는 200여건의 매물이 나돌고 있다. 지난해 10.29 이후의 두 배가 넘는다.

반면 서울 강남권과 용산구 이촌동 일대 등 중대형 아파트 단지는 이상할 정도로 매물이 적고 값도 강세다. 10.29대책과 주택거래신고제 등이 별로 먹히지 않는다. 여유계층의 경우 규제책이 쏟아져도 호가를 내려 매물을 내놓지 않기 때문이다. 도곡동 타워팰리스(1~3차 2600여가구)의 경우 중개업소에 나도는 매매 물건이 10건 안팎이다. 주변 J공인중개사무소 관계자는 "지난해 10.29 이전보다 매매물건이 감소했다"며 "매수세가 있는 것도 아니지만 팔려는 사람이 줄어들었다"고 말했다. 타워팰리스 1차 50평형은 올 초보다 호가가 1억원 정도 올랐다.

지난달 말 입주한 삼성동 아이파크 아파트도 물건이 귀하다. 나도는 물건이 5건도 안 된다. 55평형은 3개월 전보다 2억5000만원 정도 뛰어 16억~18억5000만원에 시세가 형성됐다.

강남구 대치동 래미안.우성.선경.미동 등의 고가아파트 단지는 가격변동 없이 거래만 끊긴 상태다. 대치동 S공인 관계자는 "주인들이 값을 내려서 팔려고 하지 않아 시세가 내리지 않는다"고 전했다. 용산구 이촌동도 규제의 무풍지대다. 이촌동 대우아파트 단지(총 834가구)에서 매매물건을 찾기가 쉽지 않다.

서울부동산컨설턴트 정용현 사장은 "부동산 규제정책이 비교적 잘 먹히는 분야는 강남권 등 재건축아파트뿐"이라며 "분위기가 위축돼 거래가 되지 않는 시장 왜곡현상이 장기화할 것 같아 대책이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10.29 대책과 주택거래신고제=10.29대책은 주택시장을 안정시키기 위해 다주택자에 대해 보유세를 크게 강화하겠다는 내용을 담은 규제책이다. 이 제도로 다주택자들이 집을 내놓기 시작했는데 비강남권 매물이 더 많아졌다는 지적이 많다.

주택거래신고제는 주택시장을 안정시키기 위해 집값이 많이 오른 지역을 지정하는 것. 실거래가로 거래 내역을 신고해야 하기 때문에 취득세와 등록세 등이 크게 올라 거래를 위축시키게 마련이다. 지난 3월30일 서울 강남구, 송파구, 강동구, 성남시 분당구가 지정된데 이어 지난 달에는 용산구 등도 포함됐다.

황성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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