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현대사에 비친 홍콩은 환락과 동경의 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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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한국인에게'홍콩'은 여러가지 이미지를 떠올리게 한다.'무협영화''쇼핑''환락가'같은 문화.소비관련 용어에서부터'신흥경제국''탈북자''조직범죄'등 정치.경제.사회 이슈까지 생각나는 단어들도 많다.

'홍콩간다'는 속어가 있다.주로 성적 쾌락과 관련이 있다.70년대 초반에 등장,지금도 곧잘 쓰이는 이 말은 홍콩에 대한 우리의 느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분위기가 자유로운 곳''화려함.환락이 있는 곳'그래서'도덕무장이 풀어지기 쉬운 곳'이라는.왜 이런 이미지가 생겼을까.'향항(香港)'이란 지명에서도 나타나듯 과거 홍콩은 미인들이 즐겨찾는 향(香) 수출항이었다.진주채집지로도 이름을 날렸으며 청(淸)대에는 아편수입항이었다.오래전부터 미인.향.진주.아편의 이미지가 환락의 이미지와 연결돼온 것.여기에 영국통치로'서양물이 든 곳'이라는 생각이 그런 이미지를 더했다.

52년 유행한 우리가요의 한 대목.'별들이 소곤대는 홍콩의 밤거리.나는야 꿈을 꾸며 꽃파는 아가씨….' 밤거리의 꽃파는 아가씨는 향락과 자유분방함을 느끼게 한다.일제 식민통치와 한국전쟁으로 피폐해진 우리에게 귀동냥으로 전해들은 홍콩은 자유와 동경의 대상이었다.

예부터 중계무역항으로 이름 높았던 홍콩은 49년 중국에 공산정부가 들어서면서 한때 침체기를 겪기도 했으나 가공무역으로 재기,자본주의 경제를 발달시킨다.70년대 홍콩제 만년필은 미제처럼 고급은 아니지만 외제라는 호기심을 자극하기엔 충분했다.홍콩 뒷골목에 아직도 범람하는 가짜 롤렉스 시계와 발리 구두등 모조품은 홍콩을 쇼핑의 천국으로 만들었지만'홍콩제=싸구려'라는 부정적인 이미지를 심기도 했다.

무역.교통의 요충지 홍콩은 밀수의 거점이기도 했다.“김마담,이번 일만 잘되면 다이아 사줄게”라는 허장강(許長江)의 한 영화대사에서'이번 일'이란'홍콩에서 밀수 배가 들어오는 것'이었다.홍콩은 또 냉전시대,숨막히는 이데올로기의 대결장이기도 했다.지난 69년 2중간첩 이수근(李穗根)은 탈출의 첫 경유지를 홍콩으로 잡았고,78년엔 여배우 최은희(崔銀姬)가 납치됐던 곳도 홍콩이었다.

홍콩은 80년대 중반 이른바'홍콩누아르'영화가 물밀듯이 밀려들어오고 87년 여행자유화로 실제 홍콩을 목격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우리에게 더 가깝게 다가왔다.저우룬파(周潤發)는 한국에서도 스타가 됐고,청소년이'홍콩문화'를 흡수하는 주체로 떠올랐다.특히 90년대 등장한 스타TV는 홍콩문화를 시차없이 안방으로 끌어들였다.

최근 몇년동안은 북한을 탈출한 사람들의 상당수가 홍콩을 거쳐 자유를 찾음으로써 홍콩은 우리에게'자유의 통로'로 다가오고 있다.

80년대 이후 한국과 함께 아시아의 네마리 용(龍)으로 꼽힌 홍콩은 경제분야에서 우리의 대표적 경쟁자중 하나이기도 하다.

이제 중국에 귀속되는 홍콩이 우리에게 어떤 새로운 모습으로 다가올지 벌써부터 궁금하다. 윤석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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