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지하벙커 간 중소업체 사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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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에 한 번씩 청와대 지하벙커에서 해오던 비상경제대책회의가 29일 열렸다. 네 번째 회의다. 이명박 대통령이 회의를 주재했다.

이날 회의 주제는 경제위기 극복과 고용 유지를 위한 ‘잡 셰어링(job sharing·일자리 나누기)’이었다. 회의엔 자동차 부품을 30년간 생산해 온 한 중소기업 S사 대표가 특별 손님으로 초청됐다. 이 회사가 노사협력의 모범사례로 뽑혔기 때문이다. 이 업체 대표의 사례발표가 이어졌다. 이 대통령을 비롯한 참석자들은 뜨거운 호응을 보냈다고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이 전했다. 다음은 청와대가 전한 사례 발표의 요지.

“IMF 사태 때 도산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종업원들이 상여금을 반납하는 등 위기 극복에 동참했다. 그래서 회사가 살아난 뒤 다시 상여금을 돌려줬다. 이를 통해 신뢰기반을 구축하게 됐다. IMF 사태 때보다 어렵다는 이번에도 직원들이 상여금을 반납하고 명절 선물비를 축소하는 합의안에 전부 서명했다. 모두가 흔쾌히 동의했다. 우리 회사의 모토는 ‘위기에서 잡초처럼 살아남아 꽃을 피우자’다….”


이 대통령은 한국노총·한국경영자총협회가 제안한 ‘노사안정 비상대책회의’에 대해서도 높게 평가하며 “노동부를 중심으로 정부도 이에 적극 참여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그러면서 “공기업과 금융기업이 일자리 나누기에 선도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 “실직자에 대한 직업훈련을 강화하라”는 각종 주문을 쏟아냈다.

회의에서 참석자들은 한국 경제의 향후 전망을 놓고 토론을 벌였다.

토론은 현정택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이 최근의 경제동향을 이 대통령에게 보고하면서 시작됐다. 보고의 요지는 ▶글로벌 경기침체가 점차 심화되고 있으며 ▶세계적인 경기회복 전망은 점점 불투명해지고 ▶선진국 경제의 마이너스 성장 폭이 커지면서 우리나라도 큰 폭의 성장률 하락이 예상된다는 것. 한마디로 ‘우울한 시나리오’였다.

이 보고 내용을 놓고 당·정·청의 경제 수뇌부들이 차례로 말문을 열었다.

임태희 한나라당 정책위의장은 “통상 경제가 나쁠 때는 실적치가 전망치보다 나쁘게 나온다”며 “그러나 세계 경제가 나쁘다는 것을 국민들도 잘 알고 있으니 숫자에 일희일비할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임 의장은 또 “우리는 외환위기 때 마이너스 6.9% 성장도 극복한 경험이 있지 않으냐. 이런 때일수록 국민들에게 희망적인 메시지를 줘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자 이 대통령은 “경제상황의 불확실성이 계속 커지고 있는 만큼 성장률 전망치 등 수치에 집착하지 말고 최악의 상황에 대비해 사전에 치밀한 대응방안을 마련하고 선제적 정책대응을 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가경쟁력강화위원장에 내정된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은 전날 국제통화기금(IMF)이 올해 세계 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2.2%에서 0.5%로 대폭 하향조정한 것을 언급하며 “최근 들어 비관적인 예측이 좀 더 맞아 들어가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사공일 대통령 경제특보는 “세계적인 경제학자들 중에서 종전엔 상황을 낙관적으로 보던 사람들도 최근에는 비관적으로 돌아서고 있다”고 했다.

서승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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