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쳐야 미친다' 저자 정민 교수 인터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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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광불급(不狂不及)-. 미치지 않으면 이르지 못한다 라는 뜻이다.

그러나 책제목은 '미쳐야 미친다' 이다. 앞의 '미침'은 미치려고 하는 행동에 무게를 뒀고 뒤의 '미침'은 뭔가를 이뤄낼 수 있는 미침의 가치에 힘을 실었다.

요즘 한창 세인들의 손길을 받는 이 책의 저자 정민(한양대 국문과. 사진) 교수는 자신이 스스로 미침의 즐거움에 빠져있다.

이 책에서 얘기하고자 했던 18세기 조선시대 지식인들의 내면세계가 사실은 자신의 절규와 맥을 같이 한다.

"나도 사실 학문에 미쳤고 또 그 미침을 즐긴다." 정교수의 담백한 고백이다.

"어떤 것에 미치면 꼭 길이 보입니다. 이 책을 집필하기 위해 수년동안 자료를 모았는데 필요한 자료가 없어 애태우고 있으면 우연히 그 자료가 마치 기다리고 있다는 듯이 내게 다가오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심지어는 조선중기 학자인 권필과 관련된 자료를 구하지 못해 수개월을 고민했는데 꿈에 그가 직접 나타나기까지 했어요." 책 제목이 머리가 아닌 체험에서 나왔다는 얘기다.

한양대 인문대학 그의 연구실에 들어서면 우선 방을 꽉메운 책들의 향기가 코를 찌른다. 묵향도 섞여있다. 언뜻 둘러보니 5천권은 넘어보인다. 한문학을 전공한 그에게 커피, 새, 담배, 지도,각종식물....등 별의별 소재의 도서들이 즐비하다. 그는 잠자고 있는 과거를 현재로 부활시키기 위해 지난 20여년간 모은 자료라고 했다.

책이 많다고 하자 정교수는 갑자기 앞면 책꽂이를 밀친다. 책이 너무 많아 이중으로 책꽂이를 해놓은거다.

"학교에서 이렇게 배려했냐"고 말을 던졌다 무안당할 뻔 했다. "제가 한 300만원 들여 했습니다. 우리나라 교수들의 연구환경이 그 정도는 아닙니다." 곱씹어보면 뼈있는 말이다. 우리 대학의 연구환경과 그 수준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책은 많이 팔렸냐"고 물었다. "한 4만권쯤 나갔습니다. 앞으로 상당히 더 팔릴 것 같아요."

인문학계 서적은 5000권만 팔려도 성공이라고 했다. 때문에 '미쳐야 미친다'는 요즘 출판계에서 '경이(驚異)'이자 '희망(希望)'이다.

-수년에 걸쳐 자료를 모으고 이를 사실적으로 엮어냈다. 이 책에 어떤 가치를 부여할 수 있나.

"등장인물들은 하나같이 뭔가에 미쳐 업적을 낸 사람들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우리는 이들을 성인으로, 보통사람과 다른 신격화된 인물로만 기억하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정약용 하면 '목민심서'를 지은 위대한 조선중기의 사상가로 생각한다. 그는 성인군자이고 완벽한 인간으로 인식되도록 우리는 배워왔다. 그에게는 결점도 없고 보통사람과 다른 천재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가 전남 강진에서 지낸 19년간의 유배생활을 들여다보면 너무나 인간적인 냄새들이 풍겨 나온다. 갈등고 있었고 좌절도 있었다. 9명의 자식중 6명을 마마 등 병으로 잃고 애통해 하는 다산을 접하면 그는 오히려 평민보다 더 처절한 시절을 건너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의 위대한 저서나 업적이 빛나는 건 이처럼 보통사람 보다 더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고 이뤄진 것이어서 값진 것이다.

이 책이 조선의 지식인들에게 인간냄새를 되돌려주는 역할을 했으면 한다. 그리고 그 인간냄새야 말로 그들의 고민과 사상을 보다 정확하게 이해할수 있는 첫걸음이라고 생각한다. 한마디로 이들에게 인간적인 복권을 시켜주고 싶어서 이 책을 썼다."

-이들 조선지식인들의 인간적인 면이란 현대인들에게 무슨 의미가 있나.

"그들은 '벽(癖)'에 들린 사람들이다. 그러나 가난이나 신분의 질곡을 뛰어넘어 주인되는 삶을 살다 갔다. 그 인간다움은 현대인의 삶에 대한 통찰력을 일깨워주고 있다. 책에는 김득신이라는 조선중기 시인이 나온다. 그는 본래 아둔한 사람이다. 그러나 수많은 책을 수천번, 수만번씩 읽고 외웠다. 사기의 백이전은 10만번 넘게 읽었을 정도다. 잠자는 시간을 빼고 한시도 책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결국 그는 한 시대를 풍미한 시인으로 우뚝선다. 노력하고 미치면 안되는 게 없다는 것을 그 어렵던 시대 조선지식인을 통해 체득할 수 있다. 자신의 노둔함을 탓하지 않고 오로지 노력으로 삶을 일궈낸 그의 인간다움에서 우리가 사는 현대인들을 반추해볼 필요가 있지 않겠나. "

-등장인물들이 대부분 조선 중기 실학파 지식인들이다.

"그들은 이전 지식인들과 달랐다. 이전에는 사물에 의미를 부여해 놓고 그대로 받아들였다. 예컨대 올빼미는 불길한 새로 인식해 무조건 잡아죽였다. 반면 까마귀는 효성이 지극한 반포조(反哺鳥)라 해서 숭상의 대상이 됐다. 따라서 공자와 맹자는 영원히 한점 결점없는 성인이고 신이다.

그러나 실학파 지식인들은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고 유효성에 대한 담론을 즐겼다. 때문에 이 시대에 들어서면 앵무새나 담배, 비둘기등에 대한 저서가 쏟아져 나온다. 공맹만을 논하던 이전 지식인들에게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실학파 지식인들은 사물에 진정한 가치를 환원해주는 작업을 했다. 당시 지식인들의 이런과정에 인간적인 냄새가 배어있다."

-이들이 기존 사물가치에 대한 인식 변화를 가져온 계기가 있는가.

"18세기 조선은 지금과 같은 정보의 홍수시대였다. 중국에서 수많은 중국서적이 쏟아들어와 서적 외판사원이 있었을 정도였다.

따라서 정보는 더이상 사대부들만의 전유물이 아니었다. 많은 사람이 정보를 공유하다 보니 미래예측이 가능해졌고 이에 따라 사물에 대한 인식에 변화가 생긴 것이다. 이는 인터넷 발달로 정보공유가 가능해지면서 (속도와 변화를 중시하는) 디지털 마인드가 생긴 현대와 비슷하다. "

- 글이 매우 사실적이고 맛깔스럽다. 인문학계에서 책에 대한 평가는.

"학계에서는 불만이다. 아직도 우리 학계는 주석이 주저리주저리 달린 논문식 문체를 학자들에게 요구한다. 이 요건이 맞지 않으면 글을 학술지에 싣지도 못한다. 나는 생각이 다르다. 아무리 학계에서 연구를 해서 발표해도 이를 읽어줄 사람이 없다면 무슨 소용인가."

-책에는 감동적인 사제(師弟) 얘기도 실려있다. 요즘 우리사회는 진정한 스승도, 학생도 없다고 한다. 무엇이 문제인가.

"시스템의 문제다. 학교에서 인간을 배우지 않고 점수를 배운다. 학생들은 정보를 정보로 받아들이지 않고 화폐가치로 교환해서 받아들인다. 즉 시험에 나올 것만 공부한다. 학생들이 대학입시에 얽매여 인간이 들어설 자리가 없다."

-또 무슨 책을 쓸 생각인가.

"현재 우리나라 지도를 호랑이 형상에 비유한 자료를 모으고 있다. 한반도를 호랑이에 비유한 것은 분명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18년째 관련 자료를 모으고 있다. 좀더 자료를 모은 후 왜 우리나라 모양새와 호랑이와의 상관관계를 풀어낼 생각이다. 또 선현들의 한문 문장을 우리나라 말로 풀어쓴 '문장론'을 쓸 생각이다. 예날의 명문들을 그대로 풀면 그게 바로 훌륭한 문장이다. 한문의 명문과 한글의 명문이 결코 다르지 않다. "

-책이 잘 팔려 큰돈을 벌면 어디에 쓰나.

"인문학도는 어렵다. 집 장만하느라 대출받은 돈 갚아야 할 것 같다."

-가장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정말 아무일 하지 않고 연구만 하고 싶다. 그러나 학교에는 연구 외의 다른 업무가 너무 많다."

정교수는 인터뷰 말미에 마음이 혼란스럽고 답답할 땐 경기도 마석 부근 수종사를 찾는다고 했다. 한때 다산이 즐겨 찾았던 이곳에 들르면 풍진에 휩싸이지 않는 삶에 대한 통찰이 생겨서라고 한다. 아마도 그는 다산과 책 속에서 못다한 얘기를 그곳에서 하는듯 했다.

최형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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