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중앙 시평

20대여, 정치의 문을 열어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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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최양락이 돌아왔다. 인터넷 검색어 1위를 차지하며 화려하게 돌아왔다. 그렇더라도 ‘왕의 귀환’은 지나친 호들갑이다. 사실 그는 라디오에서 꾸준히 뛰어온 현역(!) 선수다. 축구로 치자면 분데스리가에서 주전으로 뛰다가 드디어 프리미어리그에 입성한 정도라고나 할까.

그런데 TV는 왜 그를 다시 불렀을까? 이는 최근의 오락 프로그램 트렌드인 ‘복고’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호들갑은 복고 마케팅이다. 이미 배철수의 ‘콘서트 7080’은 황금시간대로 옮겼고, 개그계도 1980·90년대의 스타들이 시나브로 자리를 차지한 지 오래다. 박미선을 비롯한 왕년의 여성 개그 스타가 차지하고 있던 자리에 그의 남편 이봉원도 한자리를 차지했다. 그는 복귀 일성으로 이제는 ‘(아)줌마 시대’가 가고 ‘(아)저씨 시대’가 열린다고 호언했다.

방송이 복고를 선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방송의 영향력은 줄어드는데 그 주된 이유는 젊은 층이 예전처럼 TV를 시청하지 않는 데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디지털 방송시대가 열리자 디지털 세대는 방송으로부터 이탈하기 시작한 것이다. 10대와 20대는 인터넷이나 게임을 더 즐긴다. 방송만 그런 것이 아니다. 신문·책·음반·공연시장에서 20대의 구매력은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언론과 문화의 지적 공간에서 20대는 이미 비주류로 전락했다. 지적 담론 시장에서도 20대는 위축돼 있다. 정치적으로는 역사상 가장 무기력한 20대가 되었다. 경제적으로도 20대는 ‘88만원 세대’라고 낙인찍혀 있다.

그 공백은 강력한 구매력을 가진 ‘386 세대’가 차지했다. 아날로그 세대인 386 세대는 디지털 시대에도 계속 영향력을 확대해 왔다. 특히 30~40대 엄마들은 아이 교육을 위해 접속하는 인터넷을 통해 가장 많은 정보를 접하는 기회를 가졌다. IPTV 시대가 되면 엄마들은 더 똑똑해질 것이다. 강력한 정치적·경제적 구매력을 가진 이들 386 세대는 세상을 원하는 방식으로 만들 힘이 있다.

내가 이해 못하는 것은 바로 이 점이다. 디지털 시대가 됐는데 왜 디지털 세대는 주역이 되지 못하는 걸까? 왜 여전히 디지털 세대는 아날로그 세대의 지배를 받고 있는 것일까? 이유는 간단하다. 정치적 파워를 보여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어느 시대나 20대가 경제적 힘을 가진 적은 없었다. 20대의 힘은 정치에서 나오는 것이다. ‘386’도 20대에 자신들의 정치적 힘으로 자신들의 시대를 열었다. 뚜렷한 정치적 존재감이 아날로그 세대인 그들을 디지털 시대에도 살아남도록 한 것이다.

60년에 3·15 총선이 있었다. 이 총선이 부정선거라 하여 대학생을 중심으로 4·19가 일어났다. 이때부터 63년 한·일 국교 정상화 반대 시위에 이르기까지 20대가 대한민국을 들었다 놓았다. 이후 이들은 4·19 세대, 혹은 6·3 세대로 불리면서 수십 년간 한국 사회를 쥐락펴락했다.

그로부터 25년이 흐른 85년 2·12 총선이 있었다. 김영삼·김대중이 이끄는 신민당이 부활했고, 학원 자율화 조치가 취해졌다. 대학생들을 비롯한 20대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이때부터 87년 6월 항쟁에 이르기까지 다시 한 번 20대가 대한민국을 들었다 놓았다. 대통령 후보들도 앞다투어 대학생들의 집회에 참석했다. 이때 만들어진 386 세대의 정치적 자산이 오늘까지도 강력한 힘의 원천이 되고 있다.

2·12 총선에서 25년이 흐르면 내년, 2010년이 된다. 지방선거가 있고, 2012년에는 총선과 대선이 있다. 20대는 이 기회를 놓치면 안 된다. 정당한 정치적 지분을 요구해야 한다. 그래야만 자신들의 시대를 열 수 있다.

뚜렷한 정치적 존재감을 보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투표를 해야 한다. 인터넷 댓글과 촛불집회는 정치 질서를 바꾸는 무기가 못 된다. 투표보다 강력한 무기는 없다. 오바마도 바로 그들 디지털 세대의 적극적 투표로 당선되었다. 훗날 돌이켜보면 그들의 시대가 이번 대선에서 열렸음을 알게 될 것이다. 정치권이 20대를 두려워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두려워하도록 만들 줄 아는 자들만이 지분을 얻을 자격이 있다.

디지털 세대는 아날로그 세대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하게 무장(?)돼 있다. 아날로그 세대와의 싸움에서 결코 패할 리 없다. 말이 어찌 자동차를 이기겠는가? 단지 필요한 것은 투표를 통해 정치적 힘을 보여주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비로소 디지털 세대의 시대가 열리게 될 것이다. 승부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박성민 정치컨설팅 ‘민’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