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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속 백혈병 묘사, 너무합니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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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호 15면

9일 막을 내린 TV 일일연속극 ‘너는 내 운명’은 40%를 넘나드는 시청률만큼이나 뒷말도 많았다. 특히 극 후반부에 등장한 백혈병 관련 묘사는 뜨거운 논란을 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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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에서 주인공인 장새벽(아이돌 그룹 ‘소녀시대’의 윤아 분)은 자신을 모질게 대하던 시어머니와 자신을 버린 생모가 각각 백혈병으로 진단받아 골수이식이 급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 백혈병은 10만 명당 서너 명이 걸릴까 말까 한 드문 질환이다.

그런데 시어머니와 친어머니가 모두 백혈병에 걸린 것이다. 그것도 모자라 새벽이 골수이식을 위한 유전자 검사(조직 적합성 검사)를 했더니 시어머니와 친어머니 모두에게 이식이 가능하다는 결과가 나온다. 새벽은 누구에게 골수를 제공할 것인지를 놓고 고민한다. 결국 시어머니에게 골수를 제공하고 친어머니는 사망하고 만다.

조직 적합성 검사란 백혈구 표면의 조직 적합 항원이 장기 제공자와 수여자 간에 얼마나 일치하는가를 보는 것이다. 일치율이 높을수록 골수나 장기를 이식한 후의 거부 반응이 적다. 조직 적합 항원이 일치할 확률은 골수 제공자가 형제자매일 경우에는 25% 정도지만 부모와 일치할 확률은 약 5%에 불과하다. 더군다나 혈연관계가 전혀 없는 사람과 일치할 확률은 약 2만5000분의 1이라고 한다. 따라서 이 드라마의 주인공처럼 친어머니뿐 아니라 시어머니와도 조직 적합성이 일치할 확률은 50만분의 1 정도라는 얘기다. 너무나 극적인 설정이라는 뒷말이 나올 만하다.

혈액암인 백혈병은 크게 네 가지로 분류된다. 림프계와 골수계의 백혈구 세포 중 어떤 것의 증식이 문제가 되느냐에 따라, 또 그 증상이 얼마나 빨리 나타나느냐에 따라 급성 골수성, 만성 골수성, 급성 림프성, 만성 림프성 백혈병으로 나뉜다.

드라마에서 새벽의 친어머니가 앓았던 만성 골수성 백혈병은 이 가운데 가장 흔한 질환으로 주로 50세 전후에 발병한다. 이 백혈병은 증상이 별로 없는 만성기 상태가 수년간 지속되다가 급성기로 이행한다. 급성기로 간 후에는 수개월 내에 사망할 수 있다. 과거에는 일반적 항암치료가 잘 통하지 않아 조혈모세포 이식(골수이식)만이 유일한 완치 방법이었다.

그러나 몇 년 전 개발된 글리벡 같은 표적 항암제가 개발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표적 항암제는 기존의 항암 치료제보다 효과가 월등해 만성 골수성 백혈병의 1차 치료제로 사용되고 있고, 완치 내지 수명 연장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다만 글리벡은 장기간 사용하면 내성이 생길 수 있는 문제가 발견됐다. 최근에는 이러한 내성을 극복할 수 있는 약(‘수퍼 글리벡’이라 부름)도 개발됐다. 이런 표적 항암제의 등장으로 만성 골수성 백혈병도 당뇨병같이 약 복용으로 꾸준히 관리할 수 있는 질환으로 여겨질 날이 올 것으로 보인다.

반면 새벽의 시어머니가 앓았던 급성 백혈병은 빨리 악화되기 때문에 치료하지 않고 방치하면 수개월 내에 사망할 수 있다. 이 경우는 항암제 치료 후에 필요하면 조혈모세포 이식을 고려해야 한다.

백혈병도 다른 암과 마찬가지로 각종 항암제가 발달하면서 생존율이 높아지고 있다. 조혈모세포 이식으로 완치도 가능한 병이다. ‘백혈병 환자=불치병 환자’란 드라마 속 공식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작가들은 새로운 극적인 불치병을 찾아야 하는 숙제를 안게 됐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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