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지도>52. 한국의 오페라단 (1)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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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국내에서 한국인이 주축이 돼 상연한 최초의 오페라는 1948년 1월에 상연된 베르디의'라 트라비아타'.세브란스 출신 의사 이인선(李寅善)이 해방후 이탈리아 유학을 다녀와 창설한 조선오페라협회의 이름으로 서항석(徐恒錫)의 연출,임원식(林元植)의 지휘,김자경(金慈璟).이인선.황병덕(黃柄德) 출연으로 서울시공관 무대에 올랐다.

그로부터 50년이 지난 지금 서울에서 간판을 내걸고 있는 오페라단만도 줄잡아 20개에 육박한다.한 도시에 이렇게 많은 오페라단이 있는 곳은 세계에서도 유래가 없는 일.소프라노 조수미.신영옥.홍혜경.권해선등 세계 오페라무대에서 활약중인 성악가들을 배출해낼 정도로 국제 수준에 올랐기 때문일까. 국립오페라단.서울시립오페라단을 비롯,김자경오페라단.한국오페라단.글로리아오페라단등 민간 오페라단들이 80년대 들어 대거 난립 양상까지 보여 양적으로는 괄목할 만한 성장을 해온 것처럼 보인다.그러나 연간 오페라 제작 편수는 국.공립과 민간 오페라단을 합쳐도 10편에 못미치며 오페라 상연일수는 총 30일에 밑돈다.연중 오페라 시즌이라고 해봐야 한달밖에 안된다는 결론이 나온다.

기업 협찬을 따내기 힘든 요즘에는 절반으로 줄고 오페라단이 문을 닫았는지 조용하다.만성적인 개점휴업 상태가 계속되고 있는 것.그리고 본격적인 오페라공연보다 아리아 하이라이트를 콘서트 형식으로 연주하는 갈라콘서트로 명맥을 유지하는 단체가 태반이다.단장 1명 외에는 유명무실한 오페라단들을 양산하게 됐다.학연.지연에 따라 단원들도 이합집산(離合集散)을 거듭하다 보니 캐스팅에 소외된 성악가들의 불만이 새로운 오페라단 창단으로 계속 이어져 온 것이다. 오페라단의 숫자가 늘어나는 것과 오페라 발전은 무관하다는 점이 지적돼야겠다.대형 그랜드 오페라 위주의 제작풍토에다 베르디.푸치니등 이탈리아 멜로드라마에 치우친 현행 레퍼토리 시스템 때문이다.오페라단 간판만 바꿔 달았을 뿐 같은 작곡가의 같은 작품이,같은 연주자,같은 연출로 재상연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외국서는 오페라의 규모를 축소하고 무대장치도 단순미와 현대성을 살려 상징성만 강조하는데 반해 우리나라에서는 오히려 오페라가 지나치게 대형화.고급화돼가고 있다.오페라단장의 임무는 일년 내내 스폰서 후원업체를 교섭하는데 바쁘다.제작비의 90%를 기업후원에 의존해야 하기 때문. 우수한 출연진 확보와 새로운 레퍼토리,충분한 리허설은 모두 공연 예산과 직결된다.그래서 청중이 없다는 핑계로 연습시간도 줄이고 무대장치도 대충 넘어간다.국립.시립 오페라단과 몇몇 민간 오페라단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오페라단들이 출연 가수들에게 개런티는 커녕 매표를 강요하다시피 하는 것을 매우 당연한 관례처럼 생각하고 있다.민간 오페라단장이 오페라 한편 상연하고 나서 집을 팔았다느니 하는 이야기로 스폰서.언론매체.성악가들에게 눈물어린 호소를 하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이야기는 아니지만 이제 구태에서 탈피할 때가 됐다.

성악가들도 어차피 자비(自費)를 들여 남이 알아주지도 않는 독창회를 여는 것보다 연주회 비용이 더 저렴하고 생색도 낼 수 있는 오페라 무대를 선호하는 경향이다.오페라 무대에 서고 싶다는 개인적인 욕망을 충족시켜 줄지는 몰라도 청중 개발을 통한 오페라의 저변확대는 먼 나라의 이야기처럼 들린다.

한편의 오페라를 상연했다는 기록밖에는 별다른 의미가 없기 때문에 상연기간도 1주일을 넘기가 힘들다.객석의 대부분이 사실상 초대권으로 채워지는데다 매표에 자신이 없기 때문. 또 주역가수들도 1~2회 출연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출연진이나 오케스트라가 대부분 낮시간에는 대학 출강과 레슨에 매달려야 하기 때문에 리허설은 주로 오후4~10시에 이뤄진다.

그나마 1년에 한편이라도 오페라를 제작하는 오페라단들은 그래도 다행이다.나머지 군소 오페라단들은 갈라콘서트나 아리아의 밤을 여는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 이장직 음악전문기자

<사진설명>

학연 위주로 모였다 흩어지는 오페라단 난립으로 관객을 의식하지 않고

연주자들의 자기만족에 그치는 부실 공연이 양산되고 있다.국내

오페라단들이 가장 즐겨 공연하는 오페라중 하나로 손꼽히는

푸치니의'라보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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