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배칼럼>逆사상검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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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요즘 대선후보들에 대한 자질검증 작업이 여러 가지로 진행중이다.언론매체마다 다투어 토론회니 뭐니 하는 명칭을 붙여 후보를 불러내 대통령감으로서의 자질,대선자금 처리문제에 대한 생각,개인적 이력등을 꼬치꼬치 캐물어 본다.누구는 한번의 토론으로 갑자기 인기가 껑충 뛰어오르는가 하면 어떤 이는 바닥으로 떨어지기도 한다.국민 전체를 상대로'대통령수능(修能)시험'치르느라 후보들은 고역이다.

그런 자질검증 메뉴중에 으레 사상검증이라는 이상한 항목이 한가지씩 끼인다.여야 대선후보중에 그런 의혹을 받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고 후보중에도 다른 후보의 안보관만큼은 엄밀히 따져봐야 한다는 주장을 펴는 분들도 있다.극우보수를 대변하는 어떤 잡지는 그런 의혹을 마구 퍼뜨리기도 하고,그런 증거를 잡느라 부심하고 있다는 말도 들린다.만일 그런 사연이 있다면 사상대결을 벌이고 있는 분단국가에서는 당연히 큰 문제가 돼야 할 것이라는데 이견을 다는 이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내부의 적(敵)'에 대한 판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말하자면 우리 사회 속에 숨어있는 민주주의 위협 요인은 너무 쉽게 묻혀버리고 너무 소홀하게 다뤄지고 있지 않나 걱정스럽다.

최근 들어 박정희(朴正熙)신드롬이 되살아나면서 심지어 대학가에서조차 복제(複製)해야 할 대통령 1위로 박정희씨가 꼽히고 많은 지식인들이 그를 가장 뛰어난 대통령으로 꼽는데 서슴지 않는다.최근 그의 출신지에서 열린 한 토론회에 참석해보니 그에 대한 향수가 엄청나게 되살아나고 있다는 사실을 실감할 수 있었다.그가 이룬 가시적 업적이 있으니 그를 변호하는 쪽은 사뭇 당당하기까지 하다.

김영삼(金泳三)문민정부 실패의 가장 확실한 증거가 바로 이 박정희신드롬인 듯싶다.2공(共) 장면(張勉)정부의 무능과 무기력이 5.16쿠데타를 불러왔듯 2공 민주당 정권의 맥을 이은 김영삼 문민정부가 다시금 박정희 향수를 불러일으키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역사의 아이러니다.군정(軍政)종식을 최대의 민주화 투쟁목표로 내걸었던 6월항쟁의 한 주역이 이제 바로 군부통치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장본인이 되었으니 말이다.

3공의 개발독재가 반드시 후진국 경제성장의 필요악인지 여부를 밝히는 것은 여전히 논쟁적이다.거기에 대해서는 달리 비견할 역사적 자료가 거의 없으므로 그의 성공은 역사적 현실로 평가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박정희 통치를 관류(貫流)하는 일본군국주의식 초(超)국가주의적 발상까지도 마치 성공적인 국가통치의 전제처럼 주장하려는 극우보수 논리는 자유민주주의를 내부에서부터 위협하는 가장 무서운 요소일 것이다.

우리는 30년대 대공황을 극복하기 위해 나치즘과 파시즘으로 달려간 독일.이탈리아와 대규모 공공정책으로 경제활력을 유도하는 뉴딜로 나간 미국이 걸어간 역사의 궤적을 잊지 않고 있다.그러면서도 문민무능을 빙자해 발호하고 있는 이상(異狀)보수화의 바람은 과거회귀적일 뿐 아니라 자유주의 시장경제에 대한 가장 심각한 도전이다.

그런데도 5,6공 전력자들이 그들의 군부통치 경험을 경륜으로 치부하고 군부통치의 말기적 증세인 부패에 가담했던 무리들이 단순한 복권을 넘어 킹메이커니 후보니 하면서 권력에 재도전하는 모습은 우리를 착잡하게 만든다.아마도 그 가장 큰 이유는 개혁을 주장했던 문민정부가 구시대적 부패를 똑같이 답습하는 자기모순을 범하고,신한국을 창조하겠다던 집권당이 아무 반성없는 군부통치의 참여자들을 머릿수 채우느라 아무 기준없이 마구 받아들인 결과일 것이다.

우리 사회가 민주화라는 과일을 쟁취한지 겨우 몇년밖에 안된다는 것,우리 정부와 사회 안에는 관치적(官治的) 규제와 억압이 여전히 상존하고 있다는 것,그리고 걸핏하면 머리를 쳐드는 반민주적 기득권 세력이 수많이 잠복해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되는 것이다.그런 의미에서 후보의 자질검증 과정에서는 대선자금 처리에 대한 퍼즐식 질문이나,후보들의 말꼬리 잡기식 질문보다 군부통치 시절의 행적이나 부패의혹 연루여부가 가장 선행해 가려져야 할 두가지 검증요소가 아닐까 싶다. 김영배 뉴미디어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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