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문학전집』 200권 낸 박맹호 민음사 회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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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맹호 회장은 “앞으로 세계문학전집에 한국 문학작품을 많이 집어넣겠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11년 전 첫 번째 책을 냈을 때나 이번에 200권째 책을 낼 때나 흥분되고 긴장되는 건 마찬가지입니다.”

누군가 “모든 사랑은 첫사랑”이라고 했던가. 박맹호(75·사진) 민음사 회장은 40년 넘게 출판 일을 해 왔으면서도 여전히 ‘떨림’과 초심을 털어놨다. 19일 열린 ‘세계문학전집’ 200권 출간 기념 기자간담회 자리는 그런 마음으로 훈훈했다.

전집은 1998년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로 출간의 대장정에 올랐다. 외환위기 직후인 터라 몇 권까지 이어질지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전집은 차곡차곡 권 수를 늘렸고, 이번주 허균의 한글 소설 『홍길동전』이 200권째로 출간됐다.

책을 낼 때마다 떨린다는 것은 그만큼 애정이 진하다는 얘기일 게다. 박 회장은 “모든 책을 낼 때마다 전율과 환희를 느낀다”고 했다. 특히 “아침에 신문 문화면을 펼쳤을 때 내가 만든 책이 소개돼 있으면 하루 종일 기쁘고 행복하다”고 말했다.

박맹호 회장이 외국문학전집을 기획한 건 엉뚱하게도 서울대 불문과에서 공부하던 시절이었다. 당시 국내에 소개된 외국 문학책 번역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까닭이다. 하나같이 일본어본을 다시 번역한 중역(重譯)이었고, 그나마 문장이 조악하기 일쑤였다. 박 회장은 “존 스타인백의 소설 『분노의 포도』를 손에 들었다가 도저히 읽을 수가 없어 책을 내던진 적도 있다”고 회고했다.

하지만 박 회장은 1966년 민음사를 열고도 전집 출간을 바로 실행하지는 못했다. “자본과 경험이 부족해서”였다. 98년 전집을 내기 시작하면서 박 회장은 장정이 제대로 된 품격 있는 책을 만들어보자고 결심했다고 한다. 이번에 전집 200권 중 가장 많이 팔린 10권을 전문가들을 불러모아 판형이 제각각인 아트북으로 2000질 한정 제작한 건 책 디자인에 대한 박 회장의 그런 오래된 관심 덕이다.

박맹호 회장은 전집에 소개된 ‘문학의 고전’들을 읽어야 하는 이유에 대해 “인문학적 소양을 길러줄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인문학이 쇠퇴하면 자연과학도 발전할 수 없다는 것이다. 특히 독서 취미를 붙이는 데는 장르문학이 요긴한데, 국내 문학계는 이른바 본격문학에 비해 장르문학을 홀대한다고 지적했다. 자신도 추리소설작가 김내성의 번안소설 『진주탑』 등을 읽으며 독서에 빠져들었다고 소개했다. 박 회장은 인문학의 중요성을 얘기하며 지난해 말 폭력 사태로 물의을 빚은 국회의원들에 대해 “인문학 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들 같다”고 쓴소리를 던졌다.

박 회장은 전집의 방향 전환을 시사했다. “앞으로 전집에 한국 문학작품을 적극 포함시키겠다”는 것이다. 한국 문학작품에는 현대 작품도 들어간다. 박 회장은 “한국 출판의 세계화를 위해 이미 세계적 수준에 오른 일러스트레이션 그림책이나 동화를 외국에 소개할 방법도 찾겠다”고 밝혔다.

신준봉 기자

◆민음사 세계문학전집=판매 권 수와 규모 면에서 국내 최고로 평가받는다. 11년 동안 2877쇄를 찍어 600만 부가 팔렸다. 권당 3만부 꼴로 팔린 셈이다. 장은수 민음사 대표는 “2006년부터는 해마다 100만 부씩 팔린다”고 말했다. J. D. 샐린저의 소설 『호밀밭의 파수꾼』이 58쇄 34만 부가 팔려 최다 판매를 기록했고, 『오만과 편견』(32만 부), 『동물농장』 (20만 부) 이 뒤를 이었다. 교보문고 등을 통해 분석한 결과 구매자의 61.1%가 여성이었고, 남성 구매자는 38.9%였다. 연령별로는 30대가 가장 많이 사갔다. 민음사는 200권 출간을 기념해 『호밀밭의…』 등 판매 상위 10위에 오른 책을 책 디자이너는 물론 패션 디자이너 등 시각 분야 전문가들을 초청해 판형이 제각각인 디자인 특별판 2000질을 제작했다. 낱권 판매는 하지 않고 한 질 25만6000원에 판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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