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험의 세계사' 3권 김신 교수 著 - 해양왕국들의 어제와 오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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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무역학과 교수가 탐험사(探險史)책을 냈다.선뜻 연결이 되지 않는다.강단을 지켜온 교수와 신세계로의 도전을 뜻하는 탐험은 어쩐지 어울리지 않는 느낌이다.그러나 속을 들여다보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경희대 김신(金新.46)교수가 펴낸'탐험의 세계사'(두남刊).모두 3권으로 구성됐다.각권의 부제는'최초의 탐험가''황금의 제국''대항해자의 시대'.고대 이집트.로마부터 유럽인의 아메리카 발견을 거쳐 최근까지 여러 탐험가및 해외진출 유형을 비롯,선박과 지도의 시대별 발전,해양기술의 변천등을 마치 백과사전처럼 훑고 있다.

저자의 전공은 한국무역사.무역이라는 것도 따지고 보면 이웃국가와 세계를 대상으로 한 진출이라고 볼 때 무역사와 탐험사는 결국 같은 점에서 만난다는 시각이다.“20여년전 노르웨이의 박물관에서 바이킹의 배를 보고 영감을 받아 탐험사 연구에 착수했다”고 설명한다.그동안 돌아다닌 나라도 1백개국에 이른다고. 책에는 미지의 세계로 향한 여러 탐험가들의 호기심과 열정이 다양하게 소개된다.고산(高山).오지(奧地)같은 특정지역에 대한 탐사가 아닌 전세계적 차원에서 새로운 시장과 땅을 찾아나선 이들의 발자취를 되짚고 있다.혼란스런 우리 현실을 잠시나마 잊게 하는 청량제 구실을 한다.

저자의 기본 시각은 서양문명사의 변천이 탐험사의 역사와 일치한다는 것.세계사 속에서 강대국이 어떻게 형성됐는가를 해양과의 관계 속에서 살펴보면서 해외진출 국가의 부침을 시대순으로 조명한다.

일례로 고대 아테네의 전성기에는 세계 각지의 산물이 아테네 항구에서 교환됐고 각종 창고.상품거래소.견본시장이 세워졌으며 로마가 이집트등을 꺾고 지중해를 장악하자 지중해 무역은 전례없는 번영을 누렸다.

11세기 유럽인들의 십자군 원정은 항해술.조선술 발달의 계기가 되었으며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발견등 15세기부터 17세기에 걸친 유럽인들의

대항해는 유럽의 영향력을 전세계로 확대했다.국가의 해양력에 따라

스페인.영국등이 최강국의 바통을 이어받았다.지중해에 집중됐던 권력의

중심이 대서양으로 옮겨진 셈. 저자는 향후 세계사의 흐름이 태평양으로

이전될 것이라고 말한다.20세기 이후 계속되는 미국의 융성,일본의

약진,그리고 중국의 잠재력이 결합되면서 문명의 주도권을 잡게될 것이라는

예견이다.물론 신대륙 쟁탈 대신 세계시장을 거머쥐려는 국가간의

경제전쟁이 핵심변수로 작용한다.

“우리도 해외진출에서 주도권을 쥔 시기가 있었다.통일신라의 혜초는

서역으로 진출했고 장보고는 해상왕으로 불릴 만큼 재해권을 장악했으며

신라상인들은 아랍까지 교역했다.” 저자는 이같은 신라인들의 기상을

회복,세계무역기구(WTO)의 출범등 날로 높아지는 무역전쟁의 파고를

헤쳐가는 지혜를 모으자고 주장한다.과거의 탐험사를 냉정하게 되돌아보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서 찾는다.국가의 에너지를 대외지향 쪽으로 결집하자는

것.내일 두돌이 되는'바다의 날'을 맞아 시사성이 크다.

하지만 저자는 서구의 탐험사를 미화하지 않는다.특히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대량살해,무자비한 자원약탈,노예무역등을 역사의 거울로 삼자고

제안한다.정복자의 오만함이 민족갈등과 비극을 부른 만큼 한국기업들의

해외진출도 현지인의 문화와 원만한 조화를 이룰 때 그 효율도 극대화한다고

충고하고 있다. 박정호 기자

<사진설명>

한때 지중해 상권을 주름잡았던 카르타고의 최전성기를 재현한 그림.왼쪽

윗부분 둥그런 벽모양의 항구가 독특하다.영토확장에 그다지 관심이 없었던

카르타고는 로마와의 세차례 전쟁 끝에 멸망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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