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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내 생각은…

인문사회과학 경쟁력 키워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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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우리나라 인문사회과학자들이 하는 일이 뭐 있느냐?" "국제 경쟁력 없는 ×들이 입만 살아가지고." 술자리에서 오간 거친 대화를 지면에 옮겨 아쉽지만 자연과학자들이 바라보는 우리나라 인문사회과학에 대한 일단의 시각이다. 최근 우리나라 자연과학계의 학문적 국제 경쟁력은 일취월장하고 있다. 미국 과학정보연구소(ISI)가 제공하는 과학논문색인(SCI)의 평가에 따르면 2003년 현재 우리나라는 13위, 서울대는 전 세계 대학 중 34위를 차지하고 있다.

ISI에서 색인하고 있는 인문사회과학 분야의 국제 학술지엔 사회과학논문색인(SSCI)과 인문과학논문색인(A&HI)이 있다. 그 누구도 내놓고 거론하지 않지만 이러한 색인에서의 우리나라 국제 순위는 차마 언급하기 민망한 수준이라는 것이 정설이다.

2003년이 돼야 한국사의 일부가 미국 교과서에 1쪽 실리고, 네티즌이 만든 반크(VANK.Voluntary Agency Network of Korea)라는 사이버민간외교사절단에 의해 우리나라 역사가 바로잡히는 것이 현실이다. 고구려사 문제, 독도 영유권 및 동해 표기 문제, 세계무역기구(WTO)에서의 협상력 등과 같은 중요한 국제적 논쟁에 우리나라 인문사회과학의 국제 경쟁력 결여가 직.간접적으로 연관돼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논리의 비약일까? 세계화 시대에 우리의 논리를 우리만 알아들을 수 있는 방법으로 백날 떠들어봐야 헛일이다. 객관적 시각에서 세계 지식층의 우리나라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기 위해서는 학문적 성과의 국제화가 선결요건이다. 필자는 다음 네 가지 처방이 인문사회 분야의 국제 경쟁력을 제고할 수 있다고 믿는다.

첫째, 학술진흥재단의 연구비 지원에 있어서 자연과학의 경우처럼 인문사회 분야도 연구 결과의 국제학술지 게재를 의무화하라. 연구성과물 게재도 현재와 같이 국내 학술지와 국제 학술지의 동류 취급은 쉬운 길로 가려는 연구자의 타성을 부채질하는 것이다. 이 경우 국내 학술지의 위축이 우려되는 게 사실이지만 국제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없는 국내용 학술지는 도태되는 것이 학문 발전에 이롭다.

둘째, 통계청이 만드는 자료를 국제 수준화하라. 인문사회 분야의 기초는 신뢰할 수 있는 포괄적 자료를 확보하는 데 있다. 하지만 지방자치제가 실시된 지 10년이 지난 지금도 기초자치단체의 지역총생산(GRDP)과 같은 주요 정보를 제공하지 못하는 것이 통계청의 현실이다. '인구 센서스'와 같은 주요 인문사회 자료의 후진성은 우리나라 사회과학계가 문제를 제기한 지 수십년이 지났지만 답보 상태를 면치 못하고 있다.

셋째, 학술진흥재단 등과 같은 국가기관에서 지원한 연구비를 통해 만들어진 조사 자료를 공유할 수 있도록 하라.

넷째, 학술진흥재단의 인문사회 분야 기초학문 육성사업을 지속하라. 이 사업은 불과 3년간의 한시사업으로 설정돼 있지만 인문사회과학의 기초가 3년에 달성될 수 있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이성우 서울대 교수.농경제 사회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