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착한 조종사, 허드슨강의 기적을 만들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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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오후(현지시간) 뉴욕 허드슨강에 불시착한 US에어웨이 소속 항공기 승객들이 비행기 동체 위에서 구조를 기다리고 있다. [뉴욕 AP=연합뉴스]

#1. “새와 두 번 충돌한 것 같다.” 15일 오후 3시27분(현지시간). 뉴욕 라과디아 공항 관제탑에 다급한 무전이 들어왔다. 불과 1분 전 이륙한 US에어웨이 소속 1549편 조종사가 보낸 것이었다. 엔진 두 개가 다 멈췄다고 판단한 관제탑은 즉각 응답했다. “라과디아 공항으로 돌아가긴 늦었다. 가까운 뉴저지주 테터보로 공항에 비상착륙하라.” 그러나 1549편에선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2. 뉴욕에서 업무를 마치고 노스캐롤라이나 샬럿에 있는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1549편에 탑승했던 데이브 샌더슨은 이륙 직후 갑작스러운 폭발음과 함께 기체가 심하게 흔들리는 걸 느꼈다. 창밖을 보니 엔진에서 검은 연기가 치솟고 있었다. 곧바로 기내 방송이 나왔다. “비상착륙 중입니다. 모두 머리를 무릎 사이로 최대한 숙이고 안전벨트를 조이십시오!” 1549편의 또 다른 탑승객 밸리 콜린스는 공포에 질려 남편에게 휴대전화로 문자를 날렸다. “여보, 비행기가 추락하고 있어!”

#3. 1549편 조종사 체슬리 B 슐렌버그(57·사진)는 조종간을 꽉 쥐었다. “1970년대 미 공군에서 F-4 전투기를 몰았던 내가 아닌가.” 공군을 떠난 뒤 그는 비행안전 컨설팅회사를 운영한 경험도 있었다. 엔진은 모두 꺼졌다. 유일한 희망은 허드슨강에 동체 착륙하는 것이었다. 속도가 너무 느리거나 빨라선 안 된다. 최대한 강바닥과 평행을 이룬 상태에서 착륙하지 않으면 충격으로 동체가 두 동강 나거나 뒤집혀 많은 사상자가 날 수 있었다. 그는 마지막 순간까지 집중력을 잃지 않았다. 1549편은 기적적으로 기체에 손상을 거의 입지 않은 채 불시착에 성공했다. 그 덕에 동체는 구조대가 올 때까지 물 위에 떠 있을 수 있었다. 조종사는 구조대가 온 뒤에도 기내에 두 번이나 다시 들어가 남은 승객이 있는지 확인하고 마지막으로 비행기에서 빠져 나왔다.

#4. 뉴욕 맨해튼섬 서쪽 MTV 건물 39층 회의실에 있던 애덤 와이너는 자기 눈을 의심했다. 제트기 한 대가 뉴저지주와 맨해튼섬 사이 허드슨강으로 곤두박질했다. 눈깜짝할 사이 비행기는 화산 폭발 같은 물보라를 일으켰다. 그의 뇌리엔 2001년 9·11테러가 스쳐 지나갔다. 때마침 허드슨강을 지나던 유람선이 비행기 주변으로 몰려갔다. 동체를 육지 쪽으로 밀면서 승객을 구조하는 모습이 보였다. 곧이어 해안구조대와 헬기도 도착했다. 그 덕에 승객 150명과 승무원 5명은 모두 안전하게 구조됐다. 이날 뉴욕의 날씨는 영하 7도였다. 조금만 늦었어도 인명피해가 커질 수 있었다.

자칫 대형 참사로 이어질 뻔했던 비행기 사고가 조종사와 구조대의 침착하고 신속한 대응으로 위기를 모면했다고 AP·로이터 통신 등 외신들이 보도했다. 이날 승객 150명을 태운 미국 US에어웨이 소속 1549편이 불시착한 것은 이륙 직후 기러기 떼와의 충돌 때문이었다.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에 따르면 에어버스 A320 기종인 이 비행기의 엔진은 1.8㎏ 크기의 새와 부딪쳐도 견딜 수 있게 설계돼 있다. 그러나 이날 1549편 비행기는 새 떼와 만나는 바람에 엔진에 심각한 손상을 입었다고 미 언론이 전했다.

그러나 비행 조종 30년 경력의 베테랑 체슬리 B 슐렌버그 조종사의 노련함·침착함과 허드슨강 유람선, 해안구조대의 신속한 구조로 대형 참사를 피했다고 AP통신이 보도했다.

뉴욕시 당국은 “70여 명이 부상을 입었을 뿐 사망자는 없다”고 밝혔다. 마이클 블룸버그 뉴욕시장은 “우리는 오늘 허드슨강의 기적을 접했다”며 조종사를 칭찬했다. 1975년 이후 엔진 속에 새가 빨려드는 ‘버드 스트라이크’로 5건의 대형 비행기 사고가 일어났다. 지난 6년 동안 5만6000여 건의 새 충돌 사례가 미 항공당국에 보고됐다.

뉴욕=남정호 특파원, 서울=정경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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