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아, 힘내세요” … 훈문놀이 즐기는 1020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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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고교 3학년 김소연(19)양은 인터넷 카페에 자신의 휴대전화 번호를 남기곤 한다. ‘훈문’을 받기 위해서다. 김양은 “훈문을 받으면 하루 종일 기분이 좋다”고 말한다.

‘훈문’은 불특정 다수와 주고 받는 ‘훈훈한 문자메시지’를 줄인 말. 내용과 형식에 상관없이 받는 이의 마음을 따뜻하게 해줄 수 있는 문자라면 모두 훈문에 속한다. 훈문은 2006년 일부 네티즌 사이에서 시작돼 지금은 10대 후반과 20대 초반을 중심으로 한 놀이문화로 정착했다. 온라인이 악성 댓글로 뒤덮인 것처럼 보이지만 그 가운데서도 온기가 퍼지고 있는 것이다.

인터넷포털 다음의 카페 ‘엽기 혹은 진실’에는 하루 평균 5~7개의 훈문 관련 글이 뜨고 글마다 보통 30개 정도의 댓글이 달린다. 다음 카페 ‘훈문 한번 받아보자’의 경우 하루에 10명 정도가 가입하고 20개의 글이 올라온다. 아이돌 스타 팬클럽이나 일반 친목카페에서도 훈문을 주고 받는다.

‘좋은 하루 되세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등 안부나 명절용 문자가 많지만 ‘님아, 힘내세요’ ‘수능 잘 치시길 바랄게요’ 식의 위로성 문자도 인기다. 중학생 정현휴(16)군은 “공부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을 때 따뜻한 훈문 한 통이 친구의 한마디보다 더 힘이 될 때가 있다”고 했다.

자신의 휴대전화 번호와 좋아하는 연예인 이름을 적어두면 그의 이름으로 된 ‘역할성 훈문’도 받을 수 있다. 중학생 손명기(15)양은 “동방신기의 유노윤호가 보내는 훈문을 신청해 본 적이 있는데 진짜 유노윤호에게서 받은 것 같아 기분이 묘했다”고 말했다. 일부는 훈문놀이를 통해 이성 친구를 사귀거나 오프라인 모임을 갖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문자를 주고받는 데 그친다.

동의대 김영미(사회복지학) 교수는 “청소년 시기는 정체성 혼란과 더불어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강한 때”라며 “익명의 사람에게서 받는 무조건적인 지지가 마음을 안정시키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방수진(경희대 국문4)·김현일(서울대 동양화 3)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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