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물·선물 도깨비싸움에 증시 요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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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선물.옵션시장이 주식시장을 뒤흔드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오는 10일은 지수선물.지수옵션.개별옵션 등 세 가지의 만기가 겹치는 날이다. 만기일에 주식 매물이 쏟아질 가능성은 크지 않은 것으로 분석되고 있지만 아직 안심하기는 이르다. 선물.옵션시장이 주식 현물 시장에 영향을 미치는 경로를 정리해 봤다.

대통령 탄핵 심판 결정이 있던 지난 5월 14일. 한때 802선까지 올랐던 종합주가지수는 이날 무려 42포인트나 급락했다. 이날 주가하락의 원인은 선물시장에 있었다. 선물시장의 변동에 따라 프로그램 매물이 쏟아지면서 주가 낙폭을 키운 것이다.

프로그램 매매란 일정한 프로그램에 따라 주식을 사고 파는 것이다. 프로그램의 중요한 원칙은 선물과 현물 중 상대적으로 비싼 것을 팔고, 싼 것을 사는 것이다. 이를 차익거래라고 한다. 이때 현물은 증시의 대표종목 200개로 구성된 지수인 KOISP200지수를, 선물은 이 KOSPI200의 미래 지수를 말한다. 미래엔 이자가 붙으므로 KOSPI200선물은 KOSPI200보다 일정한 이자비용만큼 비싼 것이 당연하다(선물가격=현물가격+이자비용). 하지만 어떤 충격이나 사정으로 현물지수나 선물지수가 변동하면 상대적으로 비싼 것을 팔고 싼 것을 사는 차익거래가 생기는 것이다.

지난 5월 14일 순항하던 주가에 찬물을 끼얹은 것도 바로 프로그램의 차익거래였다. 즉 프로그램에 의해 현물 매도가 쏟아졌던 것이다. 개인들이 투기적으로 선물을 집중적으로 팔자 선물가격이 하락했고, 이로 인해 상대적으로 현물이 비싸졌다.

이 순간부터 프로그램은 비싸진 현물을 팔기 시작했다. 현물을 판다는 것은 실제로는 KOSPI200지수를 구성하고 있는 종목들을 파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주식 매물이 쏟아지면서 주가는 곤두박질쳤다.

이날은 특히 선물과 연계된 프로그램 매도뿐 아니라 주가가 급락하자 손해가 무작정 커지는 것을 막기 위해 주식 손절매(loss cut)까지 가세해 주가 하락폭을 키웠다. 선물가격과 관계없이 현물을 팔아치운 비차익거래였다.

시장은 선물 매도→선물가격 하락(현물가격 강세)→프로그램 현물 매도(차익거래)→프로그램 손절매(비차익거래)로 흘러가면서 주가 하락을 키운 것이다.

이처럼 선물이 증시를 뒤흔드는 현상을 꼬리가 몸통을 뒤흔든다 하여 '웩더독'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런 현상은 주로 하락 장세에서 많이 생긴다. "프로그램 매도는 순간적으로 집중되는 경향이 있어 매수 기반이 취약한 약세장에서 주가를 더 끌어내리게 된다는 것"(동양종금증권 김규형 수석연구원)이다.

실제로 거래대금이 1조원대로 내려앉은 5월 중순 이후 웩더독 현상이 빈번해진 것도 이를 뒷받침한다. 이 기간 프로그램 매도는 1조4000억원인 것으로 집계된다. 이중 차익거래가 5800억원, 비차익거래는 8250억원이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프로그램 매도를 시장 하락의 진짜 원인으로 볼 수는 없다고 지적한다.

한화증권 윤영호 연구원은 "프로그램 매도로 현물가격이 많이 떨어지면 상대적으로 선물보다 싸져 증시에서 프로그램 매도가 중단되는 게 당연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생기는 것은 선물시장에서 매도가 지속돼 선물 가격이 함께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선물시장에서 주가를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이 그만큼 많다는 것이 근본 원인이라는 것이다.

현물과 선물.옵션 시장은 다른 요인으로도 밀접하게 엮여 있다. 예컨대 앞으로 주가가 내릴 것으로 생각하는 투자자라면 선물을 파는 전략을 택한다. 옵션의 경우라면 이때 풋옵션(주식을 팔 권리)을 사놓으면 된다. 즉 나중에 비싼 가격에 주식을 팔기로 해놓았거나(선물 매도), 주식을 팔 권리를 사놓은 만큼(풋옵션 매수) 실제로 주가가 더 큰 폭으로 내렸을 때 비싸게 팔아 이익을 챙길 수 있기 때문이다. 주가가 상승할 것으로 생각하면 반대로 하면 된다. 이런 거래를 투기적 거래라고 한다. 투자자가 주가가 오를지 내릴지 모르는 경우에도 선물 투자를 활용한다. 현물 주식을 사놓고 동시에 선물을 팔아놓은 투자자의 경우 주가가 내리면 현물에선 손해를 보지만, 비싼 값에 주식을 팔 수 있어 이득이기 때문이다. 이런 거래를 위험을 방지한다고 해서 헤지거래라고 한다.

LG투자증권 박윤수 리서치센터장은 "지난 4월 중순 외국인들이 선물을 대거 매도한 것은 한국 증시에서 주식을 팔고 나갈 때 주가 하락으로 입게 될 손실을 만회하기 위한 성격이 강하다"고 말했다.

이상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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