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교포학자 박창근 교수 '시스템학' - 사물의 전체.부분 동시 고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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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한국사회를 혼란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한보사태를'시스템학'으로 풀어보면 어떨까.통치권자 중심의 권위주의 정치,기업과 은행의 방만한 경영,지도층 비행에 대한 불감증등이 뒤범벅됐다.그만큼 한보비리는 단순 정치사건이 아니라 우리의 온갖 병폐가 결집한 불행이며 이에 대한 해법도 여러 영역에서 시작돼야 한다.

시스템학이 미래사회를 열어가는 새로운 학문으로 각광받고 있다.일반인들에겐 다소 생소한 개념이지만 서구에서는 지난 30년대에 태동,70년대 이후 쾌속 성장하고 있다.

시스템학은 무엇보다 사물의 전체와 부분을 동시에 고찰한다.전체와 부분은 상호연관되는 통일체,즉 시스템이라는 발상이다.당초엔 세포.조직.기관등의 연관성을 밝히는 생물학에서 시작됐지만 현재는 과학.공학은 물론 정치.경제.정책결정등 인문.사회과학 분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복잡해진 사회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선 각 분야를 관통하는 혜안(慧眼)이 필요하다는 것.물리학.생물학.정치학.사회학등 학제간 연구도 왕성하다.기본적으로 자연과 인간을 분리했던 근대 서양문명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시도로 해석된다.

이같은 흐름을 일목요연하게 보여주는'시스템학'(범양사출판부刊)이 나왔다.지은이는 교포학자인 중국 후단(復旦)대 박창근교수.지난 95년에는 고려대 교환교수로 있었으며 일반시스템이론 전문가다.예전에도'일반체계이론'(민음사),'토탈시스템으로서의 세계'(범양사),'정치현상의 체계적 이해'(서울대)등 전문서가 나왔지만 시스템학의 전반적 모습을 소개한 개론서로는 처음. 책에는 시스템학의 기본 개념과 전개과정,그리고 경제.환경등에 대한 응용이 소개됐다.간혹 등장하는 수학.물리공식이 문외한들엔 부담스럽지만 시스템학에 대한 설명은 비교적 명료하다.

예컨대 저자는 오늘날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환경오염의 해법을 시스템적 사고에서 찾고 있다.지금까지 유해물질 자제.청정기술 개발.저에너지 사용등 과학적 처방이 득세했지만 심각해지는 환경오염을 막기에는 역부족이라며 사고의 대전환을 촉구한다.

박교수는 경제성장에 따른 환경오염의 불가피성은 인정한다.문제는 과학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것이라는 착각과,지구자원은 절대적으로 유한한데 발전은 무한하다는 신념의 자가당착.대기와 물,그리고 생물이 순환하는 자연계에 대한 체계적 이해를 바탕으로 총체적인 노력을 제안한다.

저자는 이어 미래사회의 지식인상을'전문화된 통재(通才)'로 정의한다.한 분야에 정통한 전문가나'팔방미인형'의 사람보다 타분야와 지식을 공유하고 문제를 풀어가는 사람들을 뜻한다.

한편 7월22일부터 나흘간 서울대 호암교수회관에선 세계 시스템학 권위자들이 총집결하는 국제체계과학학회도 열린다.학회장을 맡은 이용필(서울대.윤리교육과)교수는“지난해부터 시스템학에 대한 국내의 관심이 부쩍 높아졌다”며“정당.부처.지역이기주의에 빠진 지도층들의 개안(開眼)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박정호 기자

<사진설명>

시스템학 이론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그림.세포에서부터 인간.동식물.우주까지 모든 사물이 하나의 거미줄처럼 얽혀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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