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틴틴월드] "일자리 뺏길라" 프랑스서 반대 많아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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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다음달 1일은 유럽연합(EU) 회원국이 15개국에서 25개국으로 늘어난 지 1년이 되는 날입니다. 반세기를 달려 온 '유럽통합 열차'는 마지막 두 관문을 남겨두고 있습니다. 정치적 통합의 토대가 될 유럽헌법을 회원국 비준을 통해 확정하는 일과 EU에 편입되기 원하는 국가를 추가로 받아들여 확대를 마무리 짓는 것입니다. 유럽헌법은 중대 고비를 맞고 있습니다. 통합 주도국인 프랑스를 비롯, 몇몇 회원국에서 반대 목소리가 커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유럽헌법 비준과 유럽통합 대장정을 중간 점검해 봅니다.

-유럽헌법은 왜 필요하게 됐나요.

"EU 25개 회원국은 각자 자기 나라의 헌법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회원국은 또한 니스조약 등 지난 50여 년 동안 EU 안에서 체결된 많은 국제조약을 준수할 의무가 있습니다. EU는 1년 전 기존 15개국에서 25개국으로 크게 확대됐습니다. 의사결정 방식을 더 효율적으로 만들고 회원국 간 권한 배분 등을 명확히 할 필요가 생겼습니다. 이 때문에 4억5000만 명의 인구를 가진 EU 전체의 생활을 규정할 수 있는 공동 헌법을 추진한 것이지요. 헌법이 발효되면 경제적 통합에 이어 정치적 통합까지 이루게 되는 셈입니다."

-헌법은 어떻게 확정되나요.

"25개 전체 회원국이 모두 찬성해야 합니다. 한 나라라도 반대하면 헌법이 발효되지 않습니다. 현재 각국별로 국민투표나 의회 표결을 통한 헌법안 비준 작업이 진행 중입니다."

-프랑스에서 부결될 가능성도 있다고 하던데요.

"다음달 29일 국민투표를 앞둔 프랑스가 가장 큰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지난해 9월만 하더라도 프랑스 여론은 찬성 60%, 반대 40% 수준이었습니다. 그러다 지난 3월 중순 찬반이 역전되더니 이후 20여 차례 실시된 각종 여론조사에서 모두 반대가 찬성을 앞질렀습니다. 프랑스는 독일과 함께 유럽통합을 주도적으로 이끌어왔습니다. 자크 시라크 정부는 적잖이 당황하고 있습니다."

-왜 프랑스에서 반대 여론이 높아졌나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우선 EU가 회원 국내의 서비스 시장을 개방하려고 하는 데 대해 국민의 반감이 큽니다. 동유럽 신규 회원국들의 값싼 노동력이 프랑스로 몰려들 수 있기 때문이죠. 정부에 대한 불만이 유럽헌법 거부 분위기로 표출되는 측면도 있습니다. 시라크 정부가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추진해 온 일련의 개혁정책이 인기가 없거든요."

-프랑스 정부는 어떻게 대응하고 있나요.

"유럽헌법안 통과를 위해 총력전에 돌입했습니다. 시라크 대통령이 직접 TV에 출연해 유럽헌법 지지를 당부하고 있습니다. 주요 일간지들도 연일 많은 지면을 할애해 헌법 내용을 소개하고, 관련 소식을 전하고 있습니다. 4000만 명이 넘는 유권자 모두에게 우편으로 헌법전문을 발송할 계획도 세우고 있습니다. 공무원 급여를 올리고, 농민들에게 유급휴가를 부여하는 등 선심성 정책도 쏟아내고 있습니다."

-프랑스 외 기존 회원국 중 반대의견이 높은 나라는 어디입니까.

"프랑스보다 3일 뒤에 투표하는 네덜란드와 내년에 투표 예정인 영국에서도 반대여론이 높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네덜란드의 경우 지난 25일 발표된 인터넷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58%가 유럽헌법에 반대하겠다고 대답했습니다. 네덜란드에서 반대 목소리가 커지는 것은 이민 자유화와 국가 정체성 상실 문제 등을 우려해서입니다. 영국은 회원국 중 가장 늦게 국민투표를 하고 싶어합니다. EU에 대한 거부감이 강한 탓에 헌법안이 부결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다른 회원국이 모두 찬성하는 것을 보면서 영국 국민이 찬성 쪽으로 기울기를 토니 블레어 총리는 바라고 있습니다. 지난해 유럽헌법안이 확정될 당시 여론조사에 따르면 53%가 반대하고 찬성은 16%에 불과했습니다."

-지난해 EU에 신규가입한 중.동유럽 국가들의 입장은 어떻습니까.

"체코와 폴란드에서 반대 목소리가 크게 들립니다. 두 나라는 지난해 상반기까지 통합에 적극적이었는데 가입한 지 1년도 채 안 돼 시큰둥해졌습니다. 곧바로 혜택이 돌아올 것으로 기대했는데 사정이 그렇지 못하자 실망한거지요. 체코는 대통령이 노골적으로 반대하고 있습니다."

-당장 다음달 프랑스에서 헌법이 통과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됩니까.

"재투표가 이뤄질 가능성이 큽니다. 헌법비준 절차와 방식은 해당국이 결정할 사안이라 프랑스는 자체적으로 재투표를 할 수 있습니다."

-EU 차원에서는 어떤 대응 시나리오가 있습니까.

"비준 절차는 계속 진행됩니다. 비준 절차를 중단한다면 이미 비준한 국가의 의견을 부정하는 꼴이 되기 때문입니다. 한편으로 EU 정상들이 대안을 검토하게 됩니다. 지난해 EU 정상들은 헌법안에 서명하고 2년이 지난 뒤 한 개 또는 몇몇 국가가 비준에 어려움을 겪을 경우 유럽이사회(EU 정상회의)가 이 문제를 떠맡기로 부속 선언 30조에 명시해 놓았습니다."

-여러 나라가 반대해 도저히 비준이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는 어떻게 됩니까.

"'강한 유럽'을 지향해온 EU의 위상이 크게 흔들릴 것으로 보입니다. 회원국이 분열돼 있다는 인상을 주게 되니까요. 그렇다고 EU가 해체되는 것은 아닙니다. 기존의 니스조약 등이 계속 적용되기 때문입니다. 부결 국가가 많으면 유럽헌법은 없어져버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수가 많지 않다면 회원국들의 합의에 따라 내용이 축소된 헌법이 채택될 수도 있습니다. 예컨대 프랑스.폴란드.영국 등 주요 국가들에서 부결이 되면 헌법안은 '정치적으로 사망'하게 됩니다. 그래도 국가 간 또는 EU 기관들 간 합의에 의해 일부 조항들만으로 법안을 다시 만들 수 있다는 뜻입니다. 사안에 따라 만장일치 또는 관련된 나라들만의 참여로 재협상이 진행될 수도 있습니다."

파리=박경덕 특파원, 서울=기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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