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뚝도 IT도 푸른 꿈 꾼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01면

국내는 아직 ‘그린(친환경) 비즈니스’에 대한 인식이 낮다. 지속가능경영원이 지난해 국내 기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 따르면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 가장 노력해야 할 주체로 응답자 중 절반이 정부·공공기관을 꼽았다. 기업을 선택한 응답자는 24%에 불과했다. 항공산업에서부터 맥주회사, 심지어 나이트클럽과 같은 서비스 업체까지 모두 “그린 비즈니스는 선택이 아닌 기업 생존의 필수조건”이라며 너나없이 친환경산업에 투자하는 선진국과 다른 모습이다.

중앙일보 취재진은 글로벌 금융위기가 한창이던 지난해 11월 미국 기업의 그린 비즈니스 현장을 취재했다. ‘세계 경제의 소방서’를 자처하던 미국 안방에서 불이 났지만 그 와중에도 기업은 그린 비즈니스 투자를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미래 수익을 창출할 성장동력으로 ‘그린’을 꼽고 과감한 투자를 하고 있었다.

미국에선 ‘그린’이 먼 데 있지 않았다. 내가 살고 있는 집, 내가 일하는 사무실 빌딩이 바로 ‘그린 비즈니스’ 현장이었다.

2003년 완공된 뉴욕 맨해튼 남서쪽의 배터리파크시티에 있는 고급 아파트 ‘솔레어’. 미국 최초의 친환경 주거용 아파트라는 수식어가 붙은 이 아파트의 주민은 사실상 수돗물값을 절반만 낸다. 옥상에 물 탱크 하나 보이지 않는 깔끔한 고급 주택이지만 빗물과 오·폐수를 정화해 재활용하기 때문이다.

이런 것이 가능한 건 GE워터의 정화(멤브레인) 기술 덕분이다. 아파트 지하엔 아파트 주민이 쓴 오·폐수를 정화하는 시설이 있다. 파이프를 타고 내려온 시커먼 구정물은 하수도로 흘러 나가지 않는다. 이곳에서 몇 가지 화학처리와 GE워터의 멤브레인을 거쳐 깨끗한 물로 탈바꿈했다. 악취를 내뿜던 오수가 불과 10여m만 지나면 먹어도 좋을 만큼 깨끗한 물로 바뀌는 과정은 마치 마술과 같았다.

GE워터 최고마케팅담당자(CMO) 제프 풀햄은 “정부 지원금이 줄면서 공공 상수도 요금이 계속 올라가고 있다”며 “그동안 공장 등 상업시설에서만 물을 재활용했으나 요즘은 주거용 시설로 확대되면서 물 재활용 산업이 해가 다르게 팽창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보기술(IT) 업체도 ‘그린’의 핵심에 서 있다. 친환경 제품과 에너지 효율성이 갈수록 중요해지자 ‘그린 비즈니스’에 사활을 거는 업체가 늘고 있다.

프린터·PC 제조업체인 휼렛패커드(HP)의 미 샌디에이고 지사. 샌디에이고 중심가에서 자동차로 40여 분 떨어진 이곳의 건물 7개 중 5개 옥상엔 1.2메가와트(㎿) 규모의 태양광 발전 시설이 있다. 건물의 조명과 냉난방을 해결할 수 있는 수준이다. 프로젝트 매니저 캐빈 코웬은 “전체 건물 지붕의 65%를 솔라 패널로 덮었다”며 “태양광 발전 덕분에 앞으로 15년간 이산화탄소 배출을 1600만 파운드(약 9000t)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기자는 우에스테 부사장과 화상 비디오 회의 시스템 ‘할로’를 통해 인터뷰를 했다. 기자는 샌디에이고에, 우에스테 부사장은 실리콘밸리 팰로앨토 본사에 있었기 때문이다. HP가 2006년 개발한 할로는 한쪽 벽에 50인치 모니터 3대가 붙어 있는 원격회의 전용 시스템이다. 실제 크기와 비슷해 얼굴을 마주하고 대화하는 느낌이었다. 이 시스템을 이용하면 출장비용을 줄일 뿐만 아니라 환경에도 도움이 된다. 예를 들어 샌프란시스코에서 서울까지 4명이 출장을 갈 때 배출하는 이산화탄소만 7t이다. 나무 5000그루가 하루 동안 흡수해야 하는 양이다.


영상회의 시장은 매년 50% 이상 성장해 2013년에는 12억 달러를 넘어설 전망이다. HP를 비롯한 시스코·폴리콤 등이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세계적인 통신장비 전문업체 시스코 역시 ‘텔레프레즌스3000’이라는 영상회의 시스템을 내놓았다. 시스코 아시아 지역 총괄 대표인 강성욱 사장은 “세계 각국의 시스코 지사에 이 시스템을 설치한 결과 연간 1억 달러에 달하는 출장비를 절감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앞으로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2006년보다 10% 이상 낮은 수준으로 유지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시스코는 영상회의뿐 아니라 이동통신 기술을 접목해 이산화탄소 배출을 최소화하는 종합 대안을 마련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인터넷 기술을 기반으로 한 ‘저탄소도시개발(CUD)’이다. 이는 서울과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미국 샌프란시스코를 대상으로 시민을 위한 ‘맞춤형 통합 교통정보서비스(PTA)’를 제공한다.

새너제이 시스코 본사에서 만난 CUD 책임자인 니컬러스 빌라는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는 휴대 단말기만 있으면 목적지까지 가장 빠르고 이산화탄소 배출이 적은 교통수단을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더 나아가 교통요금 결제, 이동 중 화상회의, 교통센터에 자리한 공용 사무실(스마트 워크센터)을 이용할 수 있다.

개별 제품의 에너지 소모를 줄이려는 노력도 꾸준하다. 인텔의 환경기술 담당자인 존 스키너 이사는 “3년 전 펜티엄D 컴퓨터에 CRT 모니터를 쓰려면 연평균 1015㎾h의 전력이 필요했지만 ‘코어2듀오+LCD’ 시스템은 229㎾h면 된다”며 “앞으로 나올 모바일 플랫폼은 59㎾h까지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뉴욕=안혜리 기자

샌디에이고·새너제이=김창우 기자

▶그린비지니스 특집 페이지 바로가기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