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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왜 한국 차만 때리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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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GM·포드·크라이슬러 등 소위 빅3의 침몰은 누가 뭐래도 외국 자동차, 특히 일본 자동차들과의 경쟁에서 비롯된 것이다. 일본 차의 상징인 도요타는 77년간 세계 1위로 군림하던 GM을 꺾고 2007년 최대 자동차 회사가 됐다. 일본 자동차의 북미시장 점유율은 35%를 넘어섰다. 그런데도 어느 신문, 어느 정치인 하나 나서서 일본 차를 탓하지 않는다. 도리어 고용을 창출하는 기업이라는 칭송 일색이다.

미국인들이 늘 그랬던 건 아니다. 미국의 대일 무역적자가 본격화한 1980년대 초엔 미국 사회 곳곳에서 대일 적개심이 넘쳤었다. 일본 차가 미 본토를 공습한다는 탄식이 나오기 시작했다. 넘치는 달러를 주체 못한 일본 기업들은 미 재계의 상징인 뉴욕 록펠러센터를 매입, 미국인의 자존심을 들쑤셨다. 그 결과 미 전역에서 해머로 일제 차를 박살내는 이벤트가 줄을 이었다. 이때 신문에 등장한 용어가 ‘일본 때리기(Japan Bashing)’였다. 일본 때리기의 하이라이트는 82년 발생한 ‘빈센트 친 살인사건’이다. 빅3의 본거지인 디트로이트에서 크라이슬러의 직원이 지나가던 빈센트 친이란 중국인 기술자를 일본인으로 오인, 야구방망이로 살해한 사건이다.

그러나 20여 년이 지난 요즘 그처럼 극렬했던 일본 때리기는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대신 한국이 빅3 몰락의 원흉으로 지목돼 뭇매를 맞고 있다. 미국의 첫 흑인 대통령으로 등극할 버락 오바마는 대선 유세 과정에서 여러 번 한국 차를 공격했다. 그는 양국 간 자동차 무역 불균형과 관련, “한국이 수십만 대를 들여오는데 미국은 겨우 4000~5000대를 팔고 있다. 이건 자유무역이 아니다”라고 불만을 토로했다. 친한파 중진인 찰스 랭글 하원 세입위원회 위원장도 한·미 FTA를 가로막는 요인으로 한국 차를 걸고 넘어졌다. 론 게플링거 전미자동차노조(UAW) 위원장은 지난해 말 미 상원 청문회에 출석, 한·미 자동차 무역 불균형을 심각한 문제로 지목하면서 한국 차를 질타했다.

과연 한국이 그런 욕을 먹을 만한가. 한·미 자동차 무역이 불균형인 건 사실이다. 그러나 일본도 현지생산 350만 대를 빼고 자국에서 만드는 200만 대를 미국으로 수출한다. 대신 미국서 들여가는 차는 고작 1만7000여 대다. 비율로만 보면 일본 쪽 불균형이 훨씬 심하다. 현지 생산비율도 그렇다. 전체 일본 차 판매량 중 미국 생산비율은 63%. 현대는 주력 차종인 쏘나타와 싼타페를 앨라배마에서 만들어 현지 생산비율이 47% 정도다. 일본 차만큼은 아니지만 현대도 결코 만만치 않은 것이다. 시장 점유율을 보면 한국 차가 왜 주범으로 몰리는지 도대체 이해가 안 된다. 한국 차가 고작 3~4%인 데 비해 일본 차는 35%에 이른다. 그렇다면 빅3 몰락의 주범이 어째서 일본 차에서 한국 차로 바뀐 것일까.

주변 미국인에게 물어보니 “도요타·혼다 등은 미국 차로 생각하기 때문”이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일본 때리기에 혼쭐이 난 도요타의 경우 지난 20여 년간 친미 기업이란 이미지 구축에 혼신의 노력을 기울였다. 전략적으로 북미 13개 지역에 생산시설을 분산 배치하고 각 곳에서 수천 명씩을 고용했다. 자연히 이 지역 상·하원 의원들이 워싱턴 내 우군이 됐다. 대의회 로비에도 적극적으로 나서 워싱턴 내 이 회사 소속 상주 로비스트만 17명이다. 또 ‘히스패닉 문맹자 퇴치 운동’ 등 생색나는 지역사회 운동에 수백만 달러씩 지원해 왔다.

물론 한·미 FTA 체결을 앞두고 있어 미 정·재계와 자동차 노조가 한국 차를 공격하는 측면도 있다. 그러나 수십 년에 걸친 일본 회사들의 집요한 로비가 일본 때리기를 잠재우는 데 큰 몫을 한 것도 분명하다. 자동차 무역 불균형이 한·미 FTA의 암초로 등장한 지금, 일본의 노력을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남정호 뉴욕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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