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가 샤르댕 '인간현상' 프리고진 '확실성의 종말' 출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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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온갖 중생은 불성(佛性)을 지니고 있어서 차별이 없다.”부처님 말씀을 담은'열반경(涅槃經)'의 한 구절이다.사람은 물론 동식물,그리고 무생물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물은 평등한 본성을 지니고 있어 차이를 두면 안된다는 뜻이다.

21세기를 앞둔 세기말을 맞아 세상이 흔들리고 있다.약육강식의 경쟁이 지배하는 국제사회,환경오염에 따른 생태계 파괴,정보.자동화의 약진이 초래한 대량실업등의 틈바구니에서 헤매는 현대인들에게 한줄기 위안을 주는 두권의 책이 나왔다.

프랑스 사상가 테야르 드 샤르댕의'인간현상'(한길사刊)과 벨기에 화학자 일리야 프리고진의 '확실성의 종말'(사이언스북스刊).모두(冒頭)에 인용한 법어(法語)처럼 인간 개개인의 화합은 물론 인간을 둘러싼 자연과의 조화로운 화해를 제시하고 있다.80년대 이후 우리사회에도 거세게 불어닥친 포스트모더니즘의 열풍 속에서 원자화.파편화된 사회를 한데 아우르는 공동체의 윤리도 모색한다.

샤르댕과 프리고진은 20세기를 대표하는 사상가.샤르댕이 예수회 신부를 시작으로 지질학.생물학등으로 영역을 넓혀간 반면 프리고진은 음악.철학에 대한 청소년기의 관심을 화학과 물리학으로 넓혀가며 이른바'카오스이론'을 집대성한 것으로 유명하다.

두명 모두 인간의 역사는'진화'의 과정을 밟으면서 개선된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라는 낙관적 견해를 펼쳐보이고 있다.공통된 가치관의 상실로 공허해진 현대인들에게 희망의 윤리학을 선물하는 셈이다.특히 자연과 인간을 이원적으로 분리했던 근대과학의 허점을 성토하고 있다.

샤르댕은'인간현상'을 내며 사제복을 벗어야 했다.진화론에 입각한 그의 신학이 프랑스 교계와 마찰을 빚었던 까닭이다.그에 따르면 생명의 역사는 물질에서 시작한다.그리고 물질에도'넋'이 있다고 한다.생명의 진화과정에서 사람도 생겨나고 우주도 확장됐다는 주장에서 일반적인 범신론과 구분된다.

문제는 근대이후의 서구철학이 인간의 독자성에 무게를 실어왔다는 점.다른 생물과 구분되는 인간의 특질(特質)을 발견하는데는 기여했지만 결국 개인간의 단절과 자연과의 분리를 빚었다는 것.결과적으로 개인.집단.국가단위의 대립도 불거졌다. 샤르댕은 이 시점에서'우리'를 다시 이야기하자고 말한다.우리는 물론 사람 뿐만 아니라 자연의 온갖 사물을 수용하는 개념이다.“우주는 강력한 힘으로 뭉친 하나의 덩어리며 또한 하나의 양자(量子)”라는 것이다.

지난해 한국을 찾아 우리에게 비교적 친숙한 프리고진의 시각도 샤르댕과 크게 다르지 않다.'확실성의 종말'은 주로 뉴튼과 아인슈타인등 근.현대 과학자의 한계를 비판하고 있지만 이야기의 핵심에는 인간과 자연에 대한 새로운 이해가 자리하고 있다.

여기서 확실성은 세계가 특정한 법칙에 따라 명료하게 작동한다는 근대적 세계관으로 서구인들의 자신만만한 신념이었다.그러나 프리고진은“자연은 불안정하고 끝없이 새로운 것이 출현한다”는 입장에서 인간과 마찬가지로 자연도 창조적이고 능동적인 존재라고 힘주어 말한다.

특히 도시에 대한 비유가 흥미롭다.도시가 종교.상업지역등으로 구분되고 이중 일부를 고립시키면 도시 전체가 망하듯 인간도 자연의 일부라는 겸허한 자세가 중요하다고 역설하고 있다.

“자연은 정복할 수 있다”는 근대인들의 확신은 사라졌지만 이는'인간의 패배'가 아닌'새로운 창조'의 시작이라는 것이다. 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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