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오르는재계새별>10. 한일시멘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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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한일시멘트는 금융권에선'재계의 숨은 진주'중 하나로 꼽힌다.매출 4천억원 규모의 이 회사 자본금 대비 부채비율은 1백21%(96년기준).이자등 금융비용 부담도 매출의 5%정도로 국내기업중 최저 수준급이다.재무구조가 무척 탄탄하다는 증거다.

10개 계열사 매출까지 합친 전체그룹 매출은 지난해 9천3백억원 규모로 중견그룹으로서의 면모도 갖추고 있다.

한일시멘트는 61년 정부의 기간산업 육성시책에 따라 선정된 시멘트산업 분야의 1호 업체로서 시멘트업계 처음으로 69년 기업을 공개했다.

하지만 한일시멘트를 아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96년 차세대 전지로 불리는 리튬폴리머전지 사업진출과 올 1월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 주는 경제정의대상을 수상하면서 최근에야 매스컴에 간헐적으로 보도됐을 뿐이다.

비슷한 상호 때문에 한일그룹의 계열사쯤으로 인식하고 있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실제로 지난해 한일그룹이 우성건설을 인수할때 외부로부터 엉뚱한 축하전화를 받기까지 했다.

한일그룹 계열 오해도 이는 창업주인 허채경(許采卿.95년 작고)선대회장때부터 이어져온 보수적 사풍에 기인한다.계열사를 여럿 두고 있지만 공식적 그룹경영을 선언하지 않고 있는 것도 사풍의 영향이다.

許선대회장은 개성상인(松商)의 후예다.1919년 개성에서 태어난 그는 송도중학교를 졸업한 16세때부터 제철소.광산등에 들어가는 갱목을 납품하는 것을 시작으로 사업가의 길로 들어섰다.

許선대회장은 해방직전 석회석 사업을 벌이던중 6.25를 맞아 단신으로 월남했고 부산에서 수산물 판매업으로 꽤 큰 돈을 모았다.

전쟁후 복구사업이 봇물을 이뤄 석회석 수요가 크게 늘어나자 60년 서울로 사업무대를 옮겨 한국양회판매주식회사를 차려 전국적인 사업에 나섰다.

한일시멘트는 그의 사업수완과 정직성을 눈여겨봤던 개성상인 출신의 이정림(李庭林.전대한유화회장.작고)씨와 이회림(李會林.동양화학명예회장)씨등 20여명과의 공동출자로 설립됐다.

80년대들어 한일시멘트는 뜻밖에 레저산업으로 진출하게 된다.서울시가 88올림픽을 겨냥해 과천에 대규모 레저단지(서울랜드)를 조성키로 하고 건설과 운영을 여러기업에 타진했다가 일이 성사되지 않자 한일시멘트에 떠맡기다시피 한 것이다.

한일은 계열사중 금융기관이 없다.금융과 유통업.부동산개발과 같은 서비스산업에 대한 유혹도 적지않았으나 모두 물리쳤다.

모험보다 안정을 중시하는 이같은 경영으로 인해 탄탄한 내실을 다질 수 있었다는 긍정적인 평가와 함께 외형이 큰 대그룹으로 부상할 수 있었던 기회들을 놓쳤다는 평가도 받고 있다.

이 회사는 許선대회장이 91년 12월 창립 30주년을 맞아 명예회장으로 물러나고 장남 정섭(正燮.58)씨가 회장으로 올라섰다.2세경영체제로 바뀐 것이다.

許회장은 64년 외국어대 졸업직후 광산업과 봉제수출 업체를 운영하는등 개인사업에 재미를 붙였고 한일시멘트 경영엔 참여하지 않았다.

그러나 주변에서 가업(家業)승계 필요성을 권유해 79년 개인회사를 정리한후 한일시멘트 전무로 들어와 경영승계를 대비했다.

회장에 오른 후에도 계열사의 자율경영을 강조하고 회사 홍보물용 사진촬영조차 꺼리는등 드러내길 싫어하는 선대회장 스타일을 빼닮았다는 것이 사내외 평가다.

3남 동섭(東燮.49)씨는 대학졸업후 삼양식품에 신입사원으로 입사해

총무.경리.무역분야를 두루 거친 후 이 회사의 LA지사장을 지냈다.그는 81년

한일자야의 전무로 한일시멘트 경영에 합류했다.현재 한일건설회장과

한일시멘트사장을 맡으며 계열사의 경영에도 폭넓게 참여한다.

한일시멘트 경영에 참여하지 않은 2남 영섭(永燮.56)씨와 5남

일섭(日燮.43)씨는 각각 녹십자의 회장과 사장으로 있으면서 한일시멘트와는

독립적인 경영을 하고 있다.

한일시멘트는 2세체제가 본격 가동되면서 보수적인 사풍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95년까지 사용하던 결재도장을 사인으로 대체하는 일부터 시작해

조직도 부(部).과(課)단위에서 팀제로 전환했다.

특히 95년 계열사의 경영을 조율하는 기획조정실을 95년에 만들고 홍보팀도

신설했다.

지난해 7월 차세대 전지로 꼽히는'리튬폴리머전지'의 국내생산을 위해

미국의 베일런스사와 50대50의 합작투자로 ㈜한일베일런스를 설립하는등

신규사업에도 과감히 진출하고 있다.그룹경영을 염두에 두고 모기업인

한일시멘트 상호까지 변경을 검토하는 기업이미지통합(CI)작업도 비공개리에

진행중이다.

한일시멘트는 월 1회 사장단회의를 연다.하지만 이 회의는 간담회 성격으로

운영돼 각사의 경영 줄거리만 논의한다.중요한 투자나 경영계획은

한일시멘트 기조실의 조율을 거친 후 許회장과

이건영(李健永.58)부회장,許사장등의 '3인 모임'에서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

연말 그룹화 선포 검토 李부회장은 63년 한일시멘트의 공채1기 출신으로

입사해 줄곧 한일시멘트에 몸담은 대표적 전문경영인이다.대표이사는

아니지만 결재권을 행사하며 許회장의 자문역할도 한다.계열사사장은 입사

20~30년씩 된 공채출신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한일정보통신 설립때 영입한

김윤철(金允喆.50)사장을 제외하면 계열사 사장 모두

한일시멘트맨이다.데이콤 기획실장을 지낸 金사장은 정보통신분야 육성을

위해 스카우트됐다.

한일시멘트의 임금은 업계에서 중위권 수준.임원 판공비도 별도로

없다.그러나 복지제도는 잘 돼있는 편이다.70년대부터 임직원 자녀들의

학자금을 지원해왔으며 과장이상 퇴직자에게는 한일시멘트의 운송물량이나

납품사업을 떼어주는 일종의 소(小)사장제도를 운영해왔다.

한일시멘트는 이르면 연말 창립기념식때 그룹경영을 공식선포할 것을

검토중이다.또 2000년까지 지난해(9천3백억원)의 두배가 넘는 2조원의

그룹매출을 달성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이를 위해 기초건자재,건설.레저등 서비스산업,정보통신과 2차전지의

첨단분야등을 그룹사업의 3개축으로 설정해 제2도약을 꾀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 전체매출의 80%이상을 시멘트와 건설이 차지하고

있다.2차전지와 정보통신등 신규사업의 성패가 사세확장의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고윤희 기자 (다음은 갑을그룹편)

<사진설명>

한일시멘트 단양공장 전경. 64년 연 40만 생산규모로 준공된 이 공장은 현재

연 7백10만 생산규모로 커졌다.컴퓨터 시스템을 통한 공장자동화가 이루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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