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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된 일 찾았을 뿐인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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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칼바람이 매섭던 12일 오후 서울 가양동의 경서중학교 3층 강당. 달음질을 하던 63명의 이마엔 어느새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혔다. 강서구청의 환경미화원 채용에 응시한 이들이었다.

한 남자가 눈에 띄었다. ‘물리학 박사’로 알려진 김모(37)씨였다. 은색 안경에 머리카락이 희끗한 그는 자신의 차례가 되자 양손 손가락을 꺾고 의지를 다졌다. ‘삐익’. 김씨가 모래주머니를 메고 출발선을 박찼다. 기록은 22초38. ‘에이’. 실망한 그의 입에서 한탄이 새나왔다. 19초는 돼야 ‘합격 안정권’이기 때문이다.

처음에 인터뷰를 꺼리던 그는 기자가 다가서자 “(박사)과정은 수료했지만 능력의 한계로 학위를 따진 못했다”고 말했다. 또 김씨는 “박사가 미화원 시험에 응시한다고 잘못 알려진 뒤 지인들이 어떻게 알았는지‘혹시 너 아니냐’는 전화를 7~8통 거는 등 마음고생이 컸다”고 토로했다.

현재 강서구에 사는 그는 “집안의 장남이며 미혼”이라고도 했다. 일터가 없는 건 아니다. A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 일한다. 김씨는 “보다 안정적인 직장을 찾으려 응시했을 뿐 ‘고학력 취업난’사례로 관심을 받고 싶진 않다”고 말했다. 김씨는 “친구들은 더 나은 직장을 찾아가고 싶어하지만 나는 일의 종류를 가리지 않는다”고도 했다.

이번 채용 인원은 5명이다. 경쟁률이 12.6대 1에 이른다. 이날 응시생 중엔 김씨를 포함해 4년제 대학 이상을 졸업한 고학력자가 11명, 전문대 출신도 12명이었다. 체력시험에 결석한 사람도 없었다. 요즘 같은 경제위기에 3100만~3300만원에 이르는 첫 연봉( 수당 포함)을 감안하면 그럴 만도 하다. 미화원은 정규직은 아니지만 공무원에 준하는 ‘정원 외 상근인력’ 대우를 받는다. 화곡동에 사는 김영숙(45)·김영만(36)씨는 남매 응시자였다. 영만씨는 “달리기를 잘한 누나의 별명이 ‘발발이’였다. 미화원 일도 거뜬히 잘 할 수 있다”며 사람들 앞에서 자랑도 했다.합격자 발표는 22일이다.

이진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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