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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법관까지 사이버 테러 당하는 세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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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서울중앙지법 김용상 영장전담 부장판사가 인터넷 논객 ‘미네르바’ 박대성씨에게 구속영장을 발부했다가 ‘사이버 테러’를 당하고 있다. 인터넷의 폭력을 더 이상 묵과해서는 안 된다는 산 증거라고 본다. 지난해 11월 나경원(한나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정보통신망 이용 촉진 및 정보 보호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은 인터넷에서의 악플과 명예훼손을 가중처벌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인터넷에서 익명의 다중(多衆)으로부터 테러나 다름없는 모욕을 당하고도 하소연할 데조차 없던 수많은 피해자를 위한 구제책인데도, 야권은 ‘네티즌 통제법’이라는 과장된 말장난을 앞세워 법안 상정을 가로막고 있다. 자신들도 한번씩 당해 보아야 정신을 차릴 셈인가.

김 판사의 경우 영장 발부를 비난하는 글과 함께 얼굴 사진·출신 학교 등 신상 정보까지 인터넷에 공개됐다. “한번 당해 보라”는 식이다. 익명성 뒤에 숨은 사악함에 말문이 막힌다. 게다가 ‘김민석·노건평 등에 대해서는 영장을 발부했고, 친박연대 양정례 의원과 이명박 대통령 후원회 관계자 등에 대해서는 기각했다’며 영장 발부의 편향성을 부각시키려 했다. 그러나 김 판사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받은 오세철 교수, 최열 전 환경운동연합 대표, 신학림 전 언론노조위원장의 구속영장도 기각한 전력이 있다. 거꾸로 대통령 부인의 사촌언니 김옥희씨에게 영장을 발부한 적도 있다. 김 판사를 공격한 네티즌은 입에 맞는 사실만 악의적으로 짜깁기해 법원에 테러를 가한 것이다. 이런 네티즌이 표현의 자유의 틀 속에서 다른 선의의 네티즌들과 동등하게 대우받는 것이 옳은가. 인터넷 공간의 자정(自淨)기능에만 기대하기에는 폭력·모욕의 정도나 수법이 너무 교활해지고 독해졌다.

인터넷에서 자기 신분을 감춘 상태에서는 사람을 직접 대면할 때보다 공격성이 6배나 높아진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고 한다. 지난해 최진실씨 자살 사건을 비롯, 많은 사람이 인터넷 폭력이 계기가 돼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다니던 직장·대학을 그만두고 이사 가는 등 크고 작은 피해를 당했다. 그런데도 정치권은 사이버 폭력 방지책이 마치 진보·보수의 대결이라도 되는 양 쟁점을 호도하며 사태의 심각성을 외면하고 있다. 더 이상 머뭇거릴 이유가 없다. 표현의 자유를 제대로 지키기 위해서라도 사이버 역기능 예방·해소를 위한 대책을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 다만, 법률에 의한 처벌은 되도록 최소화하면서 학교 교육 강화, 분쟁 조정 활성화, 포털 규제 등 단계적이고 중층적인 대책을 병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우리는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