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2시간 운동이 건강과 자신감 줬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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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호 15면

장기 이식자 및 기증자 10명을 주축으로 결성된 ‘히말라야 생명나눔 원정대’가 지난해 12월 22일 히말라야 아일랜드 피크(6189m) 등정에 성공했다. 왼쪽부터 양지모씨(간 이식·아래사진 오른쪽), 김웅한 교수(서울대병원 흉부외과), 민경배씨(간 이식·아래사진 왼쪽), 김광식씨(간 기증), 최용범(한국노바티스 상무), 서경석 교수(서울대병원 장기이식센터), 박영석 대장(산악인). 연합뉴스

크리스마스를 사흘 앞둔 지난달 22일 새벽 4시. 정상 공격조 6명은 등반대장인 산악인 박영석(46)씨를 따라 해발 5600m 고지의 마지막 캠프를 나섰다. 모자 위에 장착한 랜턴으로 바로 앞사람의 발치만 알아볼 수 있을 만큼 캄캄했다. 어둠은 경사 80도에 가까운 암벽을 오르는 두려움조차 삼킬 정도였다. ‘생명줄’에 매달려 그저 앞사람만 따라 기어 올랐다. 시속 40㎞가 넘는, 얼음 조각이 섞인 강풍에 몸이 날아갈 뻔하기도 했다. 5시간이 지난 오전 9시 20분. 간·신장 이식자와 기증자 10명이 주축인 ‘히말라야 생명나눔 원정대’는 아일랜드 피크 정상(6189m)에 깃발을 꽂았다.

히말라야 6189m 봉우리에 오른 ‘간 이식자’ 양지모·민경배씨

정상에는 간 이식을 받은 양지모(55·2007년 1월 수술)씨와 민경배(51· 2005년 5월 수술)씨, 매형인 민씨에게 간을 기증한 김광식(40)씨가 함께 섰다.

“처음엔 그저 기쁨, 얼떨떨함뿐이었어요. 하지만 금세 10여 년간 나를 대신해 생계를 맡고 아이들을 키워 온 아내 얼굴이 떠오르더군요. 간경화 진단을 받은 95년부터 아무런 불평 없이, 내가 스트레스 받을 일 없도록 항상 신경 써 준 아내와 아이들이 다시 한번 얼마나 고맙게 느껴지던지….”

7일 오후 서울 강남역 인근 커피숍에서 만난 양씨는 “걱정하며 말리던 가족이 10년은 더 늙어서 돌아온 것 같다고 놀린다”며 웃었다. 몸무게가 3㎏쯤 줄었고 피부도 나빠진 것 같다고 했다. 함께 나온 민씨도 “모래먼지 때문에 공기도 탁하고, 상상했던 것처럼 멋진 설산(雪山)이 결코 아니었다”며 손을 저었다. 그는 귀국한 지 열흘이 넘은 요즘도 자다가 숨이 가쁜 것처럼 느껴져 벌떡 일어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하긴 그런 건 함께 간 서 교수님이나 방송사 PD처럼 원래 건강한 사람도 마찬가지로 겪은 일”이라며 그들은 다시 웃는다. 두 사람 모두 더없이 건강하고 편안한 얼굴이었다.

원정대원 중 최고령자인 양씨는 간 이식 수술을 받기 전까진 거동조차 힘들었다. “간혼수 증세로 사흘씩 정신을 잃은 적도 있어요. 다리가 너무 부어 소변도 못 볼 지경이었죠. 간 염증 때문에 허리까지 문제가 생겨 결국 아들로부터 간을 이식받은 거예요.” 수술 후에도 6개월 만에 일을 하겠다고 나섰다가 쓰러져 재입원했다. 1년 됐을 때도 간수치가 270까지 올라가(40 이하가 정상) 통원치료를 받았다. “가까운 산에 다니고 한강변에서 자전거를 타는 등 운동을 하루 2시간 이상 꾸준히 하기 시작했어요. 무엇보다 머리가 아파 힘들었는데, 그런 증상이 싹 없어지더군요. 히말라야 등반을 준비하면서 훨씬 더 좋아졌죠.”

민씨는 수술 전까지 건강을 자신하던 편이었다. 그런데 2002년 건강검진에서 간암 소견이 나왔다. 갑자기 쓰러지기까지 했다. 색전술(간동맥에서 공급되는 혈류를 차단해 암세포를 괴사시키는 치료법)을 받은 뒤 조심했지만 2004년 암이 재발한 것 같다는 진단을 받았다. 처남이 간을 떼어줬다. “퇴원 후 1년 가까이 서울 근교에서 유기농 채소와 증류수를 사다 먹어 가며 푹 쉬었어요. 운동은 3개월쯤 지났을 때부터 아침 식전 1시간, 저녁 식후 1시간30분씩 꼬박꼬박 했죠. 주로 밖에 나가 10㎞ 이상씩 걸었어요.” 수술을 전후해 많이 쓰는 스테로이드제제가 근육량을 크게 줄어들게 한다. 그래서 민씨는 영양을 골고루 섭취하며 관절에 너무 무리가 되는 운동은 피했다. 기업 회계사로 일하며 술·담배를 많이 하던 때 90㎏이 넘던 민씨의 몸무게는 지금 70㎏대다. 민씨는 “몸무게 관리도 중요하다. 간에 부담을 주지 않도록 동물성 지방 섭취를 최대한 줄이려고 항상 노력한다”고 말했다.

민씨의 처남 김씨는 장기 공여자로는 유일하게 정상에 올랐다. 그는 “이식 수술을 통해 건강을 제때 지키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고 술과 담배를 거의 끊었더니 오히려 전보다 더 건강해졌다”며 “공여자의 경우 이식 수술로 인한 위험은 거의 없는데도 기증을 꺼리는 게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들은 “장기이식과 기증에 대한 인식이 바뀌어 좀 더 많은 사람이 건강을 되찾길 바란다”며 “가족을 위해서도 우리 역시 계속 건강을 지켜 가겠다”고 다짐했다. 원정대는 12일 해단식을 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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