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우석 칼럼 책에 길을 묻다] 내키는 대로 읽으세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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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선가(禪家)의 가르침은 불친절하다. 부처의 법이 무언지, 깨달음이 무언지 설명해주는 법이 없다. 혹시 덜 떨어진 수행승이 그걸 물으면 스승은 몽둥이로 패거나 꽥 고함을 지른다. 왜? 개념·추상에 빠지면 죽음이니 기꺼이 구해주려는 것이다. 몽둥이와 고함소리, 즉 방할(棒喝)은 그래서 불교 교육철학의 백미다.

맞다. 개념·추상으로 안다는 것은 허깨비다. 사과 맛을 어찌 알까. 사과에 관한 산더미 정보를 쌓아놓았다고 그걸 아나? 그저 한 입 으썩 깨물면 끝이다. 따라서 학생이 먼저 배고파야 하고 몸으로 알아야 한다. 스승이 할 일은 단 하나다. 제자가 목말라 숨이 컥컥 넘어갈 때까지 참아주는 것, 그게 전부다. 그때 축여준 물 한 방울은 꿀이고, 보약이다.

문제는 제도권 교육이다. 요즘 학생들은 배고프지 않다. 아니 식욕을 느낄 짬이 없으니 집단거식증에 가까운데, 주변은 난리다. 부모와 스승은 친절에 목숨을 걸었다. “너는 배고파야 한다. 다음 이 대목에서는 요렇게 배고파라”고 닦달이다. 그러곤 입 안 가득 쑤셔 넣는다. 비유가 아니라 실제상황이다.

참담한 지옥도(地獄圖)의 그 현장은 말하자면 ‘공장형 친절 교육’인데, 지금 전 지구촌에 확장 중이다. 뉴욕에도 한국식 입시학원이 성업 중이라는 뉴욕타임스의 최근 보도가 그렇다. 중국은 아예 유치원부터 하버드 반을 편성한대나? 어쨌거나 공장형 교육은 평가도 제법 높은데, 굿 소사이어티가 펴낸 신간 『대한민국 60년 성찰과 전망』에 비치는 한국교육 평가가 그랬다.

거기에는 독일 도이치방크연구소의 보고서가 등장하는데, 그에 따르면 한국은 스페인과 함께 당당한 교육투자 성공국가다. 인적자원 수준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회원국가를 포함한 세계 34개국 중 6위이고, 2020년에는 독일·일본을 따라잡는다. 다 좋은 얘기이지만, 뒷맛은 개운치 않다.

우리 전통교육은 그렇지 않았다. 방할은 아니라도 공장형 친절 교육과는 너무도 달랐다. 서당교육만해도 몸을 앞뒤로 흔들면서 문장을 통째로 외우게 했다. 옛날 중국은 그걸 체회(體會)라고 했다. 정보를 머리에 주입하는 게 아니라 몸 전체에 새겨 넣는 ‘통짜 교육’인데, 역시 우악스러운 불친절 교육의 또 다른 방식이다. 교육 얘기를 짐짓 꺼낸 것은 우리 관심인 책읽기 때문이다. 불친절한 교육을 책읽기 방식에 대입하면 어찌 될까? 아마 난독(亂讀)쯤이 안 될까? 억지와 의무가 아니라 마음 가는 대로 읽는 책 말이다. 강요도, 점수 매기기도 없으며 어떤 보상도 따르지도 않으니 가히 최상의 책읽기임이 분명하다.

있는 것은 자발성과 즐거움뿐이다. 사실 누가 강요하는 책, 즉 지정곡은 재미가 덜하다. 같은 책이라도 스스로 목말라야하고 자기 입으로 삼켜야 한다. 그 점에서 책 지면이란 지식 흐름과 함께 책과의 만남이 이뤄지는 정보의 자유시장이다. 올 한 해 그런 책읽기의 길동무가 되기를 새삼 소망한다.

조우석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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