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를잡아라>덤핑추적 007작전- 메이커.암거래업자 쫓고 쫓기는 숨박꼭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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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6면

최근 불경기가 심화되면서 덤핑거래가 성행,메이커와 덤핑거래업자간 숨바꼭질이 벌어지고 있다.

메이커입장에서는 자사제품이 정상적인 유통망을 통해 최종소비자에게 판매돼야 가격질서를 유지할 수 있기 때문에 덤핑을 자율단속한다.그러나 대리점이나 중간도매상등에서는 불경기에 물건이 덜 나가는 만큼 덤핑이라도 쳐서 현금을 챙기고 메이커나 총판으로부터 일정량 이상의 물량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에 경기가 나쁘면 덤핑거래가 많을 수밖에 없다.제일제당의 영업직원 K씨.최근 서울암사동의 한 슈퍼마켓에서 구입한 자사제품'게토레이'가 덤핑물건임을 확신했다.

그가 확신한 근거는 게토레이 캔 밑바닥에 표시된'990331F1:22'.이 표시의 앞부분은 유효기간이 99년3월31일까지임을 의미하지만 제품을 출하한 총판대리점을 알아낼 수 있는 암호로도 사용가능하다.그런데 이 암호는 암사동지역으로 공급하는 총판대리점 표시가 아니다.때문에 덤핑거래로 다른 관할지역에서 이쪽으로 흘러들어왔다고 볼 수밖에 없었다.

K씨는 곧바로 덤핑거래가 성행하는 청량리시장쪽으로 달려갔다.덤핑현장을 잡기 위해서다.아닌게 아니라 한 점포에서 게토레이등 자사제품의 겉박스에 표기된 바코드가 살짝 뜯겨져나간 것을 확인했다.

일반인은 눈여겨보지 않으면 알지못할 정도의 흠집.그러나 K씨의 눈에는 덤핑치기 위해 바코드를 제거한 것인줄 금방 알 수 있었다.다음날 K씨는 이같은 사실을 회사 담당부서에 보고,블랙리스트 명단에 올리고 예의 주시중이다.

제일제당은 덤핑을 막기 위해 공장에서 전국의 22개 물류센터로,다시 각 대리점으로 제품을 출하하면서 로트(LOT)번호를 매기기도 한다.예컨대 서울 용산물류센터가 로트1번이면 영등포대리점은 로트1-1번이 된다.

이같이 덤핑거래를 쉽게 추적할 수 있도록 지역.제품별 유통과정을 확인할 수 있는 표시를 비밀리에 하는 것은 제일제당뿐만이 아니다.

최근 덤핑거래와 가격파괴가 잦은 일부 음료.제약.주류.화장품.생필품을 비롯,학습참고서등 출판물까지 포함된다.표시방법도 숫자.영문자.암호색깔.바코드등으로 다양하다.

출판업계의 경우 2~3년전에는 노골적으로 책겉표지에 지역표시를 하거나 영문암호를 썼다.그러나 최근에는 책중간에 비밀표시를 한다.

예컨대 A학습지의 경우 1백37쪽에 그냥 보면 보이지 않으나 불빛에 비치면 글씨가 나타나는 특수잉크로'경기''강원'등 지역표기를 해놓는다.첩보전을 방불케 한다.덤핑방지를 위해 이같은 조치까지 해놓는등 메이커들의 단속이 강화되면서 덤핑거래 전문업자들은 덤핑물건을 가능한한 먼 지역에 재판매한다.

한 대리점에서 덤핑친 제품이 인근 지역에 유통되면 경쟁 대리점에서 금방 알아차리기 때문에 아예 시.도 경계를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그러나 이같은 비밀 표시는 공정거래법상 위법에 해당된다는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제조업체등이 이를 악용해 제품의 공급을 제한하거나 최종소비자가격을 통제하는 수단으로 쓰는 사례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지난 95년 출판업계에 대한 지역별 암호표시에 철퇴를 가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김시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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