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구한말에 ‘파격 사군자’ 꽃핀 까닭은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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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강 김규진, 월하죽림도, 10폭 병풍, 견본수묵, 전체 130×375㎝. [학고재 제공]


서울 소격동 학고재에서 7일 개막해 24일까지 열리는 ‘한국 근대 서화의 재발견’은 이 시기 서화를 다루는 드믄 전시다. 1880년대 석파부터 1940년대 춘전 이용우, 영운 김용진까지 근대 서화가 37명의 작품 120여 점이 나왔다. 서양화가 들어오고, ‘미술’이 ‘서화’를 대체한 신문물의 세례 속에서 식민지 전통 서화계는 물 위의 기름처럼 겉돌았다. 서울에 전차가 다니고 백화점이 생겼지만 당시 서화에 이 같은 소재의 변화는 보이지 않는다. 선비도 화원도 사라진 이 시대, 충절을 바칠 대상도 없던 서화가들은 더욱 사군자 그리기에 집착했다.

석파 이하응, 병란도, 1887, 견본수묵, 69×39㎝. [학고재 제공]

이처럼 소재는 비슷하되 화면 구성이나 필치에서 변화를 발견할 수 있다는 게 근대 서화를 재조명하는 학자들의 말이다. “조선 후기에서 일제 강점기까지 한국의 근대 서화는 내용은 고루할지라도 이전과는 달리 파격적인 화면 구성과 필묵법 등 개성미가 두드러진 게 특징이다. 매란국죽(梅蘭菊竹)을 일컫는 사군자 용어가 정립된 것도 이 시기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명지대 이태호(미술사학) 교수의 평가다.

시대의 부침과 함께 한 석파 이하응은 명성황후로 인해 청으로 내몰렸다 돌아온 67세 때 운현궁에서 재기를 노린다. 이때 그린 병란도(甁蘭圖)는 독특한 모양의 화분에 심은 난을 다룬 두 폭 화첩이다. 전시에서 눈여겨볼 또 다른 서화가는 한국 최초의 사진관을 만들어 운영한 어문 황철(1864~1930)이다. 이전 서화에서는 찾기 어려운 빠른 필치와 이채로운 화면 구성이 돋보이는 묵죽도, 극적인 농담의 봉황도 등이 나왔다. 영친왕의 서법 선생으로 창덕궁에 금강산 벽화를 그리기도 했던 해강 김규진(1868∼1933)의 ‘월하죽림도(月下竹林圖)’도 개성있다. 열폭 병풍에 특유의 굵은 대를 한가득 그렸다.

전시작 대부분이 처음 공개되는 것으로 서화에 일가견이 있는 학고재 우찬규(53) 대표가 10여 년간 모은 작품이다. 주로 일본에서 사들였다. 우 대표는 “경제적으로 힘든 시기를 맞아 일제 강점기 같은 난세에도 예술의 꽃이 피어났다는 희망을 보여주고자 전시를 열었다”고 말했다. 그는 “개별 작품 판매는 하지 않고 미술관 개관을 원하는 컬렉터에게 한몫에 팔거나 추후 기증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02-739-4937.

권근영 기자

◆사군자(四君子)= 매화·난초·국화·대나무, 혹은 이를 그린 동양화를 이른다. 고결함을 중시하는 문인화의 대표 소재다. 동아시아 문화에서 매란국죽 애호의 역사는 길지만 이 넷을 묶어 사군자라 부른 것은 중국 명나라말 『매죽란국사보』『개자원화전』부터다. 우리나라에서는 1925년 ‘조선미술전람회(선전)’에 ‘서(書) 및 사군자부’가 생기면서 사군자라는 이름이 널리 쓰였고, 널리 그려졌다. 선전의 다른 부문과 달리 사군자부는 심사위원이나 출품자 대부분이 조선인으로 이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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