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은 언제나 있다 … 대공황 때도 신기술 쏟아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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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 껴안고 R&D에 집중을
‘상생’의 구조조정

위기 극복은 고통 분담에서 출발한다. 구조조정은 불가피하지만 외환위기 때와는 달라야 한다. 전문가들은 가급적 많은 사람을 껴안고 가는 방식을 제안했다. 동시에 원가 절감과 새 시장을 찾는 노력을 함께해야 한다고 말했다.


▶오문석 실장=그동안 세계 경제는 장기 호황을 누리면서 생산이 넘쳤다. 지금은 생산을 줄여야 하는 시기다. 그렇다면 누가 생산을 줄여야 하는가를 놓고 치열한 경쟁이 벌어질 수밖에 없다. 이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구조조정을 해야 하지만 잠재력이 있는 기업은 살려야 한다.

▶주인기 교수=외환위기 때의 구조조정은 인력을 줄이는 쪽이었다. 그러나 사람을 내보내는 게 능사가 아니다. 실업자가 생기면 수요가 줄어 기업도 부메랑을 맞는다. 원가 절감을 위한 노력을 전방위적으로 하되 사람은 줄이지 않는 쪽으로 가야 한다. 이게 고통 분담이다. 원가 절감만으로 기업이 살아남을 수 없다. 불황 속에서도 물건을 팔 수 있는 새로운 수요를 찾아내야 한다.

▶이승철 전무=공급 과잉이 심각한 분야가 아니라면 다 함께 사는 구조조정으로 가야 한다. 임금을 삭감해 고통을 분담하면 된다. 남는 인력은 연구개발이나 재교육으로 돌려야 한다. 기술이 뒤처져 해외에서 수입하는 품목을 국내에서 제대로 개발한다면 큰 효과가 있을 것이다. 전체 수입의 10%만 대체해도 국내총생산(GDP)의 4%라는 막대한 시장이 열린다.

▶양덕준 대표=어렵다고 너무 위축되지 않아야 한다. 어렵다고 사람을 급하게 줄였다 상황이 좋아지면 다시 인력을 모으는 게 쉽지 않다. 조금만 양보하면 된다. 유가가 배럴당 150달러를 넘으면 큰일 날 것처럼 생각했지만 사람들은 잘 적응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관광·의료 규제 없애 파이 키우자

일자리 늘리기

일자리를 많이 만들기 위해선 활발한 창업이 필요하다. 하지만 단순한 생계형 영세 창업에선 벗어나야 한다. 기업의 투자도 촉진해야 한다. 이를 유도하려면 각 분야에 남아 있는 불필요한 규제를 걷어내야 한다.

▶이경희 소장=외환위기 직후엔 직장을 잃은 사람들이 대부분 음식점을 했다. 이게 10년간 누적돼 왔다. 이젠 음식점이나 단순 판매업에서 탈피해 컨설팅이나 사업 지원, 중개업 등 본격적인 서비스업으로 가야 한다. 대기업도 태스크포스(TF)팀이나 분사를 통해 적극적인 사내 창업을 지원해야 한다.

▶이승철=다른 나라는 대기업의 업종이 다양하지만 우리 대기업은 몇몇 제조업에 국한돼 있다. 규제 때문이다. 관광·의료 분야는 막아놓고 음식점만 하도록 한 셈이다. 외환위기 이전 25만 개이던 식당이 60만 개로 증가한 것이 좋은 예다. 관광 분야를 키우고, 병원이 영리법인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땅값·세금·물류비 등 사업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도 낮춰야 한다.

▶주인기=외국인을 데리고 한 음식점을 갔더니 이 정도면 외국에서도 통하겠다고 하더라. 하지만 그 음식점 주인은 국내 장사만 생각한다. 자영업을 그저 먹고사는 일로만 생각하지 말자. 세계적인 수요를 생각하며 물건을 만들고 서비스를 해야 한다. 중견기업이나 중소기업도 생각을 바꿔 전 세계를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 이런 비전을 세운다면 일자리도 더 많이 생길 것이다.

▶양덕준=정보기술(IT) 분야에선 자기 아파트에서 기술 개발을 하는 사람이 많다. 문제는 대부분 영세하다는 것이다. 누가 투자를 해 줘야 한다. 결국 대기업이 이런 기술을 발굴해 지원하고 투자하는 의지를 보여야 한다.


국민 유전자에 ‘합심·단합’ 새기자
위기 극복 키워드

대공황 당시 미국의 대통령이던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것은 두려움 그 자체”라고 말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도 도전하는 기업가 정신과 어려움에 굴하지 않는 용기다.

▶이경희=가장 필요한 것이 기업가 정신이다. 인터넷이 발달하고 글로벌화가 진전되면서 할머니가 만든 고추장도 세계에 내다 팔 수 있다. 이를 활성화하려면 아이디어와 투자가 만나야 한다. 기업인은 회사를 투명하고 건전하게 운영해야 하고, 투자자들은 유망 회사를 발굴해 투자할 수 있어야 한다. 인수합병(M&A)도 중요하다.

▶이승철=기업가 정신은 단순히 돈을 벌려는 사업가 정신과는 다르다. 기업을 키우고 일자리를 늘리는 기업인에 대한 이해와 존중이 필요하다. 위기를 극복하려면 우리 국민의 유전자에 ‘합심’과 ‘단합’이 새겨져야 한다.

▶양덕준=지금은 모든 것이 불확실하다. 회복되는 시기가 6개월 후가 될지, 3년 뒤일지 아무도 모른다. 분명한 것은 언젠가 좋아진다는 것이다. 이때는 지금과는 다른 패러다임의 변화가 있을 것이다. 이런 흐름을 읽고 미리 준비해야만 위기를 기회로 만들 수 있다.

▶주인기=요즘 학생들은 대기업이나 안정된 직장만을 선호한다. 젊은이들이 중견기업 등에 취업해 새로운 기회를 찾아나서야 한다.

▶오문석= 그동안 우리 기업들이 재무상태를 개선하고 기술력을 키워온 것은 희망적이다. 포기하거나 위축되지 말고 새로운 제품과 혁신으로 승부하면 된다.



기업의 전략은

불황 겪는 각국
공공투자 봇물
그 시장 노려라

대공황 때도 새로운 기술과 서비스가 나왔다. 오일쇼크로 어려울 때도 중동 특수가 열렸다. 언제나 시장은 있다. 많은 나라가 대규모 경기 부양책을 쓰고 있다. 돈을 풀면 수요가 는다. 문제는 이걸 우리 것으로 만들 수 있느냐다.

▶오문석=원화 가치가 떨어져 수출을 하기 좋은 여건이 됐다. 1930년대엔 대공황 속에서도 전력과 석유화학에서 새로운 제품과 생산 방식이 나왔다. 70년대 말 2차 오일쇼크 때도 소니는 워크맨을 내놨다. 유망 산업뿐 아니라 유망 시장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중국이 그나마 안정돼 있고 선진국 중에선 유럽을 보다 적극적으로 공략해야 한다.

▶주인기=오일쇼크 때 어려움을 겪었지만 산유국의 수요가 폭발하면서 중동 건설 붐이 일었다. 지금도 전 세계가 공황에 가까운 불황을 겪고 있지만 많은 나라가 GDP의 10~15%를 공공투자에 쏟아 붓고 있다. 분명히 수요가 창출될 것이고 6개월 뒤에는 효과가 나타날 것이다. 문제는 우리가 이런 수요를 얼마만큼 확보할 수 있느냐다.

▶이경희=지금은 산업 구조에 지각 변동이 일어나고 있다. 불황 때문이 아니라도 베이비붐 세대들이 대거 퇴직을 해야 하는 인구구조적 측면의 구조조정을 준비해야 하는 시기도 다가왔다. 10~20년 동안의 먹거리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국내 시장은 좁다. 사업의 글로벌화를 적극 추진해야 한다.

▶양덕준=우리의 과제는 기술 수준을 일류로 높이는 고도화다. 남의 것을 대충 비슷하게 만들어선 국제 경쟁을 할 수 없다. 산업 전반에 필요한 핵심 요소 기술의 수준을 높이는 데 적극 투자해야 한다. 기술 개발을 할 때 90%까지는 큰돈이 들지 않는다. 그러나 나머지 10% 단계에서 인력과 돈이 많이 필요하다. 과거의 벤처지원제도처럼 1억~2억원씩 나눠줘 연명만 하도록 해선 안 된다. 고도화를 할 수 있는 곳에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한다.

김정수 경제전문기자, 김원배 기자

사진=안성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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