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 스테이지/연극열전2 ‘쫑파티’] 어설프지만 따뜻한 즉흥 무대의 감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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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에 대한 여러분의 사랑 차고 남습니다. 더 이상의 관심, 부담스럽습니다. 이제 그 사랑을 빈자리 많은 연극 ‘리타 길들이기’로 돌려 주십시요.”

객석에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리타 역으로 출연 중인 공동 사회자 최화정씨가 “대본에 있는 대로 좀 진행하죠”라며 눈을 흘겨도 대박 터진 연극 ‘늘근 도둑’의 박철민씨가 쏟아내는 애드리브를 막을 순 없었다. 짜여진 대본은 없었다. 그래서 어설펐고 실수도 많았다. 그게 또 신선했다. 언제 이토록 인간미 물씬 풍기는 공식 행사를 보았던가.

5일 저녁 대학로 동숭홀에서 열린 ‘연극열전2’ 폐막식은 한편의 즉흥 무대였다. 리허설은커녕, 사전 고지도 제대로 되지 않고 진행된 탓에 당황한 인사들의 예상 밖 멘트가 줄을 이었다. 축하공연차 무대에 선 배우 오정해씨는 “(기획자인) 조재현씨가 그저께 밤 12시에 술취한 목소리로 와 달라고 해서 왔는데…”라며 땀을 뻘뻘 흘렸다. 청바지에 기타 하나 달랑 메고 나온 가수 윤도현씨는 “쫑파티에서 노래 한 곡 간단히 해달라는 요청이 이런 정식 무대일 줄은 전혀 몰랐다”고 말했다. 그래도 노래만큼은 어느때보다 구성지고 활기찼다.

일반 관객도 300여명 초청받았다. ‘연극열전2’ 10편을 모두 보았다는 한 관객이 무대에 올랐다. “‘잘자요 엄마’를 엄마와 같이 봤는데 끝나고 우리 모녀, 아무 말도 못했어요. 그저 공원 벤치에 앉아 자판기 커피를 홀짝일 뿐이었죠. ‘라이프 인 더 씨어터’를 보고 이순재 선생님과 어묵 꼬치를 함께 먹은 영광도 잊지 못할 겁니다. 서른 살이 된 저에게, 제가 준 가장 큰 선물은 바로 ‘연극열전’이었습니다.”

깜짝 등장한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의 축사도 있었다. “연극은 가상입니다. 허구입니다. 하지만 저는 한번도 거짓을 말하지 않았습니다. 무대에 선 순간만큼은 늘 진실했습니다. 그러나 현실의 삶은 진실만을 얘기할 수 없게 만들더군요.” 장관이 된 이후, 이보다 더 멋지고 진솔한 연설이 있었을까.

폐막식의 피날레는 시상식이었다. 팬·기자단 투표로 뽑은 ‘배우상’은 송영창씨에게 돌아갔다. 기립박수가 터져나왔다. 수상을 예상하지 못했던지 점퍼 차림에 모자를 푹 눌러 쓴 그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물의를 일으켰던 과거에 대한 기억 때문이었을까. 한동안 허공을 바라봤다. “도저히 무대에 설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래도 계속 대본을 들이밀더군요. 계속….” 끝내 말을 잇지 못했다. 화려하지만 ‘짜고 치는’ 시상식에 불과한 연말 방송가 연기대상과 전혀 다른 풍경이었다. 조촐하지만 따뜻한 연극인들의 밤은 그렇게 저물어 갔다.

 최민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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